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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녹의 변화 | 운영자 | 2020-0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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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변화 에녹은 주전 3492년(A 622년)부터 주전 3127년(A 987년) 까지 365세를 향수하고 변화 승천하였습니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생긴 죽음의 높은 장벽을 뛰어넘어 영생에 대한 최고의 간증이 되었습니다. 이는 에녹이 아담으로부터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로 주신 특별한 은총입니다.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의 7대손 에녹. 에녹에 관한 기록을 볼 때,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녹은 죽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담 : (창 5:5)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 : (창 5:8) 그가 구백 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 : (창 5:11) 그가 구백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게난 : (창 5:14) 그가 구백 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마할랄렐 : (창 5:17) 그가 팔백 구십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야렛 : (창 5:20) 그가 구백 육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녹 : (창 5:23)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므두셀라 : (창 5:27)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라멕 : (창 5:31) 그는 칠백 칠십 칠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노아 : (창 9:29) 향년이 구백 오십세에 죽었더라 아담부터 노아까지 몇 세에 향수하고 죽었다고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에녹만큼은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고 기록돼 있지, 죽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셨다는 기록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녹은 365세에 죽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인가요?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조상들과 후손들은 향수하고 죽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 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 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데려 가시므로’는 히)‘라카흐’ jq'l;로서 이 세상과는 다른 장소 곧 ‘하나님의 나라로 산 채로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지상에서 생존하던 에녹을 죽음을 거치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이끌어 옮기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가 있는 삶이었습니다. 어떻게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을까요? 에녹은, 아담 할아버지와 308년 동시대 살면서(아담의 사망 연대 930세에 아담부터 야렛까지 자식을 낳았을 때의 나이를 모두 더한 622년을 빼주면, 아담과 에녹의 동시대 기간 308년이 나옵니다.) 아담을 통해서 전해들은 하나님의 말씀, 에덴에서의 생활, 온전한 순종, 타락의 실상과 죽음에 대한 말씀들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은 에녹의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은 기뻤을 것입니다.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동행하며 지냈습니다. (창 5:21-24)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 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삼백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생활을 하다가 365세에 향수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에녹의 65세 전과 후의 삶을 정확하게 구분지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으며 어떠한 계기로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을까요? (암 3: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동행’은 히)‘이트할레크’ &Leh't]YIw" 로서 ‘자기 자신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예속시켜서 뒤를 따라간다.’는 의미이다. 또한 ‘함께 가는 것’이며,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분의 뜻을 따라 철저히 한 걸음씩 옮겨 놓는 것’입니다. 에녹의 동행이 더욱 위대한 것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자녀를 낳으며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은둔 생활을 하며 지냈던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살면서도 경건한 생활 속에 하나님과 마음을 맞추며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신만 잘 믿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예언하였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다서 1:11 말씀과 같이 심판의 주로 임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에녹이 봤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셔서 경건치 못한 뭇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을 보며, 에녹은 경건의 생활을 하며 철저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고, 아들을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은 첫 번째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유 1:14-16)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 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사람의 죽음은 죄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해결된다면, 죽음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이 땅에 사망이 왔고, 아담은 최초로 죄의 결과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죽음이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자신의 죄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회개하며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가르쳤겠습니까? 그리고 308년간 아담과 함께 살았던 에녹이 그 말씀의 열매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운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녹도 308년간 아담과 동시대를 살면서 처음부터 그 말씀을 다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65세에 아들을 낳으며 에녹의 생활도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 동안 믿지 못했던 65년의 세월을 회개하며 243년(308년-65세)간 아담의 말에 더 철저히 귀 기울였을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아담부터 노아까지 사망 연대를 살펴본다면, 아담이 제일 먼저 죽고(아담력 930년), 57년 후에(987년)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운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담의 죽음은 부활의 상징이 되었고, 두 번째 세상을 떠난 에녹의 모습은 죽음이 아닌, 살아서 하나님께로 옮기운 변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에녹은 구속사적으로 세 가지를 예표합니다. 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에녹의 동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예표입니다. (요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 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②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음 아래 놓여 있으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귀한 진리를 예표합니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③ 마지막 재림 때, 환난과 패역이 극에 달하는 세상에, 성도들에게 있을 영광스러운 변화에 대한 예표입니다. (빌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 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생긴 죽음의 높은 장벽을 뛰어넘어 영생에 대한 최고의 간증이 되었습니다. 이는 에녹이 아담으로부터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로 주신 특별한 은총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믿고 그 말씀을 지킬 때, 또한 ‘우리도 변화하리라’는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사망의 세력을 능히 이기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사도 바울은 자기 당대에 죽지 않고 살아서 천국에 갈 것을 소망하며 이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마지막 나팔이 불어질 때, 죽은 자들은 다시 살고(부활), 살아있는 우리는 홀연히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재림 때 살아 있는 사람은, 죽지 않고 영광의 세계에 가는 것에 대해 ‘변화’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으로 ‘우리도 변화하리라’라는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에녹과 같이 때가 되면 변화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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