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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수 없는 다리, 1946년 ③ 운영자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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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nfaith.com/bbs/bbsView/115/5822268

돌아올 수 없는 다리, 1946

 

농민들은 폭 1미터의 한 부분에서 농사를 짓고, 다른 구역으로 가서 또 짓고, 또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다. 정말 무지한, 공산당식 방법이다.

토지 수확량을 거두어 가는 방법 또한 무지막지했다. 수확고의 25%를 거두어 갔는데, 실제 수확량이 아니라 예정 수확량의 25%였다. 세금은 돈을 번 다음에 내는 것이 상식이다. 앞으로 돈을 얼마만큼 벌 것이라고 국가에서 예상액을 정해 주고 미리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착취이다.

북한의 토지 개혁은 일종의 기만이었다. 무리하게 획일적으로 강행되었고, 집단 농장으로 가는 단계적 조치에 불과했다.

결국 1958년 집단 농장화가 이루어졌다.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가 되고, 국민들은 국가의 농노(農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유 재산제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농민들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구호를 내걸었지만, 무상 분배는 없었고 무상 몰수만 있었을 뿐이다.

남로당 총책을 지낸 국내파 공산주의자 박갑동의 증언이다.

이북에서의 토지 개혁은 무상 몰수, 무상 분배로 지주와 자영농, 영세 소농까지 전부 없애 버렸어요. 이런 일은 동유럽의 폴란드나 체코에서도 없었던 일이에요. 그런데 북한 김일성 집단은 이런 것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몰수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이 국내에서는 한반도 항일(抗日)을 위해서 싸운 적이 없고, 국내 동포들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해방 직후에는 전국 재산의 8할 이상이 일본인 소유의 재산이기 때문에 국유화돼 있었고, 대지주라고 해야 극소수에 불과한데, 공산주의자들은 중농 이하의 영세 소농에 이르기까지 무상 몰수에 의한 무상 분배를 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 무조건 무상 몰수, 무상 분배해서 집단 농장화하니까, 물질적 정신적 인센티브가 없어져서 생산량이 격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식량 부족 사태가 생기고, 토지 개혁이 다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박갑동, 이철승 공저, pp.65-67)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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