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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의 분단 정책과 이승만의 대응 ⑥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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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분단 정책과 이승만의 대응 ⑥ “먼저 그 사람들을 회유(誨諭)해서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다. 내용을 모르고 따라다니는 무리를 권유하여 돌아서게만 되면 함께 나아갈 것이요...” 설득이 되면 우리 편이다. 하지만 설득이 안 되는 자들이 문제다. 그들에 대해서 이승만은 비정하게 말했다. “친부형(親父兄), 친자질(親子姪)이라도 원수로 대우해야 한다.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애증(愛憎)과 친소(親疎)를 돌아볼 수 없는 것이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건설자와 파괴자는 협동이 못 되는 법이다. 건설자가 변경되든지, 파괴자가 회개하든지 해서 같은 목적을 가지기 전에는 완전한 합동은 못 된다.” 이승만은 공산당은 절대로 협동할 수 없는 원수이며 파괴자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의 위대한 연설은 이렇게 끝난다. “이 큰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치 못하면 종시(終是)는 다른 해방국들과 같이 나라가 두 조각으로 나뉘어져서 동족상쟁의 화(禍)를 면치 못하고, 따라서 우리가 결국은 다시 남의 노예 노릇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경향 각처에 모든 애국 애족하는 동포의 합심 합력으로 민주 정체하(民主政體下)에서 국가를 건설하야 만년 무궁한 자유 복락의 기초를 세우기로 결심하자.” 당시만 해도 남한에서 공산당은 불법이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우익과 좌익이 죽기 살기로 싸우던 시기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강경한 연설은 조갑제의 표현처럼 “70세 노투사(老鬪士)의 위대한 선제 공격”이었다.(조갑제, <조갑제닷컴> 2011.7.25.) 제대로 얻어맞은 조선 공산당의 박헌영은 “세계 민주주의 전선의 분열을 책동하는 파시스트 이승만 박사의 성명을 반박함”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표현은 극렬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박헌영 등 공산 세력이 주도한 인민 공화국이 이승만을 주석으로 추대한 것이 불과 석 달 전인데, 갑자기 파시스트라고 공격하니 앞뒤가 안 맞았다. 이승만에게서 보여지는 천재성 중의 하나는 타이밍이다. 공산당에게 기습 공격을 가한 것이 12월 19일이다. 박헌영이 반박하면서 남한 정국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입장을 놓고 찬반 양론이 뜨거워졌다. 논쟁이 한창 달아오르던 12월 26일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과인 신탁 통치안이 발표되었다. 한국인들에게 자치(自治) 능력이 없으므로 강대국들이 5년 기한의 신탁 통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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