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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분단 정책과 이승만의 대응 ⑦ 운영자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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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분단 정책과 이승만의 대응

 

그것은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이었다. 5천 년간 독립국이었던 우리가 자치를 못 한다는 지적은 화약고와 같던 민심에 불을 붙였다. 즉각 김구와 이승만이 주도하는 반탁(反託)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공산당도 처음에는 반탁의 흐름에 밀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박헌영의 조선 공산당은 찬탁인지 반탁인지 태도를 결정하지 못했다. 소련의 지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박헌영은 서울 주재 소련 영사관을 찾아가 지침을 받으려 했으나, 영사관 측은 본국으로부터 훈령을 받지 못하였다고 했다.

결국 박헌영은 1228일 밤 비밀리에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갔다. 그곳에서 소련군 민정(民政) 사령관 로마넨코가 지침을 하달했다. 신탁 통치를 결의한 모스크바 협정을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지령을 받은 박헌영은 194612일 서울로 돌아와 신탁 통치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남한 민중에게 제대로 된 학습 효과가 되었다. 불과 1주일 전에 이승만이 공산당은 사대주의자에 매국노라고 비판했다. 그 말이 귓전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강대국이 조국을 다스린다는데 공산당이 찬성하고 나섰다.

 

이승만의 말이 맞다는 것을 공산주의자들이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이승만은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함으로써 해방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해방에서 건국까지의 3년 동안, 이승만과 다른 지도자들의 중요한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승만은 외부 세력이 만들어 놓은 흐름을 관망하다가 적당하게 올라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적절한 타이밍의 선제적 행동으로 스스로 흐름을 만들어 나갔다. 본인이 흐름을 만들고 본인이 주도해 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것이 그가 대권(大權)을 차지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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