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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의 환국(還國), 그 우여곡절 ③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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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환국(還國), 그 우여곡절 ③ 건준이 세력 확장에 박차를 가하던 8월 20일, 광주의 벽돌 공장에 숨어 있던 인물이 서울로 올라왔다. 훗날 한반도에 파란을 몰고 온 공산주의자 박헌영(朴憲永)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박헌영은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다.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났는데, 석방 사유가 특이하다. 공산당에서 전향을 했거나 혐의가 없어서가 아니고 정신병자라는 이유였다. 박헌영은 몇 달씩이나 자신의 똥을 먹어 가며 정신병자 행세를 했다. 혁명 과업을 위해서 똥을, 그것도 몇 달씩이나 먹어 낼 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 박헌영은 서울에서 조선 공산당 재건 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여운형의 건준에 참가해서 조직을 장악해 버린다. 좌우 연합 조직에 한 파트너로 참가했다가 결국 조직 전체를 차지하는 공산당의 수법을 발휘한 것이다. 박헌영이 장악한 건준은 9월 6일, 조선 인민 공화국(인공)을 선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산당이 선포한 인민 공화국의 주석으로, 미국에서 돌아오지도 않은, 돌아오는 것 자체가 불투명한 이승만이 추대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승만을 얼굴 마담으로 이용하려는 공산당의 전술이었다.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그때까지 귀국하지 않았던 김구를 내무부 장관으로 발표한 것도 같은 술책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장관에는 국내 명망가들을 앞세우고, 차관에는 공산주의자들을 포진했다. 그럴듯하게 보여서 세력을 확장한 다음에 자신들의 뜻대로 정국을 끌고 가고자 했다. 앞으로는 얼굴 마담을 내세우고 뒤에선 실세가 장악하는 것은 그자들의 고전적인 수법이다. 미 군정은 당연히 인민 공화국을 거부했다. 그것은 해방 정국의 한낱 해프닝으로 끝나 버렸다. ‘인민 공화국’에는 이처럼 복잡한 사연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깊숙한 사연을 알 리가 없었다. 대중은 해방과 독립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일본이 물러갔으니 당연히 우리나라 정부가 세워질 것으로 기대했다. 일반 대중에게는 그때까지 좌익도 없었고 우익도 없었다. 그저 인민 공화국이 세워졌다는 뉴스가 보도되니, 그것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정부이고 이승만은 새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승만의 귀국을 재촉했던 것이다. 9월 13일자 하지의 일일 보고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승만을 한국의 손문(孫文, 중국 혁명의 아버지)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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