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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의 환국(還國), 그 우여곡절 ④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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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환국(還國), 그 우여곡절 ④ 이승만은 10월 5일 뉴욕 공항에서 출발했다. 프란체스카는 동행하지 못하고 3개월 뒤에야 시애틀에서 일본으로 가는 군 수송선을 탈 수 있었다. 공항에는 그녀와 미국인 친구들, 구미 위원부 임원들이 나왔다. 역사적인 귀국 길에 오르면서 이승만은 말했다- -“ 나 한 사람은 오든지 가든지, 죽든지 살든지 일평생 지켜 오는 한 가지 목적으로 끝까지 갈 것이다.” 그 한 가지 목적은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일이었다.(이한우, P.306) 한국에 돌아온 이승만은 당연히 인민 공화국 주석 제의를 거절했다. 10월 21일, 그는 올리버에게 편지를 썼다- -“가소로운 부분은 공산당이 나를 수반으로 해서 정부를 조직한 일이오. 나는 그들 에게 소련이 나를 반공주의자라고 공격하는 마당에 내가 공산당 지도자가 되었으 니 큰 영광이라고 말하였소. ...” 공산주의자들의 “가소로움” 때문에 그는 삽시간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것이 기회가 되어 환국할 수 있었다. 이승만의 귀국을 가능케 한 두 가지 우연, 하지와 윌리엄즈의 만남과 인민 공화국 명단 발표는 때로 드라마보다도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보여 준다. 더군다나 이승만을 도와준 두 세력, 미 군정과 공산당이 이승만으로 인해 숱한 고초를 겪게 되는 훗날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흥미롭다. 이런 것을 우연이라고도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딱 들어맞는 성경 구절이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이승만의 귀국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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