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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승인 외교 ② 운영자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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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nfaith.com/bbs/bbsView/115/5822203

 

임시정부 대통령, 친미 외교와 반공 노선

임시정부 승인 외교

 

(지난호(5/19)의 이야기 끝부분:

히스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1995년이다.)

 

1942년에서 1945년까지 미국에서 소련으로 발송한 전문을 해독한 베로나(Verona) 프로젝트 결과로, Ales라는 함호를 사용한 스파이가 소련에 보낸 보고 파일이 발견되었다. Ales의 움직임을 추적해 보니, 얄타 회담 이후 소련을 방문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 간첩의 알리바이는 앨저 히스의 동선(動線)과 일치했다.

(김용직, 서울: 기파랑, 2009, p.193. 이주영, 서울:배재학당총동문회, 2009, p.91)

 

그는 얄타 회담 당시 각종 기밀을 소련 측에 넘겨준 스파이였다. 한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미국의 고위직에 소련 간첩이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이승만을 비난한 것은 당연했다.

앨저 히스의 사례는 아직도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한국에게 귀담아들어야 할 충고를 준다. 세계 최강대국 정부의 한복판에 공산주의 스파이가 침투해 있었다. 소련이 멸망하면서 공개된 각종 문서에는 소련의 스파이 활동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 주는 케이스로 가득하다. 미국에서 원자 폭탄이 발명되었을 때, 소련은 이미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는 것도 그 한 예이다.

동독과 서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동독 멸망 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5만 명 정도의 스파이가 서독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中略)...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패망하여 300만 명이 학살당하고 100만이 보트 피플이 되어 버린 베트남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티우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간첩이었으며...(中略)...

공산주의와 대결했던 미국, 독일, 베트남에서 스파이들의 활약은 이처럼 대단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예외일까? ...(中略)... 주체 사상의 창시자로 권력 핵심부에 있었던 황장엽(黃長燁) 선생은 남한에 5만 명의 간첩이 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집권 여당의 회의 기록까지도 김정일에게 보고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간첩이 활개를 쳐도 잡지 않는 희한한 나라가 된 것은, 간첩들을 비호하는 종북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中略)... 종북이라는 말 자체가 과거 민주 노동당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좌파들이 만든 말이다. 좌파가 종북의 실체를 인정했는데도, 그걸 우파의 억지라고 우기는 것은 지성(知性)을 포기하는 행태이다. ...(中略)...

 

이승만은 앨저 히스에게 거절당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임시 정부 승인을 요구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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