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평양 비전, 그리고 교민들과의 사연 ③ | 운영자 | 2020-11-14 | |||
|
|||||
|
태평양 비전, 그리고 교민들과의 사연 ③
(지난호(1/06)의 이야기 끝부분: 오늘날 5대양 6대주로 뻗어 가는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품었던 꿈의 실현이다.) 하와이는 8개의 유인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승만은 하와이 8도를 조선 8도에 비유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와이 여덟 섬에 한인 아니 가 있는 곳이 없으니 가위(可謂) 조선 팔도라. 섬 도(島)와 길 도(道)가 뜻이 다르나 음은 일반이니, 이것을 과연 우리의 남 조선이라 이를 만한지 라. 장차 이 속에서 대(大) 조선을 만들어 낼 기초가 잡히기를 바랄지니, 하나님이 10년 전에 이리로 한인을 인도하신 것이 무심한 일이 아니 되기를 기약하겠도다.” (이한우, p.183) 교육, 언론 이외에 이승만이 주력한 것은 기독교 전도였다. 언론과 교육과 선교를 통하여 조국 광복을 위하여 장기적으로 독립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이 그의 하와이 비전이었다. 하와이의 교민들에게는 ‘사진 결혼’이 유행이었다. 사탕 수수밭에서 일하다가 혼기를 놓친 남자들이 한국으로 사진을 보내서 결혼을 하는 형태였다. 고국에서 신부들이 올 때, 이승만 박사의 바지는 대인기였다. 이승만의 바지를 입고 나가면 결혼을 잘 한다는, 일종의 미신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교민들이 이 박사를 얼마나 존경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나마 사진 결혼으로라도 신부를 얻으면 다행이었다. 노동 이민을 간 총각들 가운데는 결혼하지 못하고 타국에서 일생 동안 노동만 하면서, 고국 산천과 가족들을 애타게 그리다가 한 많은 일생을 마친 사람들이 많았다. 나라가 망해서 겪어야 하는 청년들의 슬픔이었다. 외롭게 일생을 마친 노총각들 중에는 고국에서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알뜰히 모았던 돈을 이승만에게 맡기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찾는 데 써 달라고 부탁하며, 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승만이, 참으로 위대한 이승만이 된 것은 그의 힘으로만이 아니다. 타국에서 날품팔이로 살면서 모은 재산을, 있지도 않은 나라를 위해 바치고 훗날의 건국 대통령의 품에 안겨서 저 세상으로 간, 가여운 영혼들의 비원(悲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독립운동 하면서 참으로 어렵고 고달플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승만은 자신의 품에 안겨 죽어 간 이름 없는 애국자들의 장례를 치를 때마다, 각오를 다지며 힘을 내곤 했다. (프란체스카 도너 리 저, 조혜자 역. 서울. 2006. p.82) (계속)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