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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비전, 그리고 교민들과의 사연 ② 운영자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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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nfaith.com/bbs/bbsView/115/5822174

태평양 비전, 그리고 교민들과의 사연

 

 

(지난호(12/30)의 이야기 끝부분:

민주주의는 글자 그대로 국민이 주인 된 세상이다. 주인 된 국민이 교육도 받지 못하고 종교심도 없으며 공익을 위해서 행동하지도 않으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으로 일깨워지고 종교로 교화(敎化)된 국민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행동할 때, 민주(民主)의 세상이 열린다.)

 

이승만의 견해는 오늘날, 포퓰리즘이 판을 치는 민주 만능의 시대에, 귀담아 들어야 할 탁견이다.

 

그의 민주주의론은 하와이에서의 교육 활동의 과정에서 체득된 것인 듯하다. 교육, 종교, 행동은 그의 교육 지침 속에 스며들어 있다. 한인 중앙 학원의 뒤를 이어서 이승만이 세운 한인 기독 학원은 4가지 교육 지침을 표방했다

: 1) 교육과 기독교 지향의 학생 활동

2) 한국인의 주체성 확보

3) 젊은이들의 지도력 향상

4) 사회 교육의 추진.

 

학교 교사진은 대부분 미국인들이었다. 강의는 주로 영어로 진행되었다. 교과목은 하와이 공립 초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정신에 투철한 인재를 길러 내고자 했고, 성경 공부를 강조했다. 채플 시간에 주로 설교한 이승만은 한국인은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학교의 장점은 비용이었다. 학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최저로 줄였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큰 걱정 없이 다니게 했다. 수업료는 무료였고, 기숙사비는 실비 정도만 받았다. 하지만 가난해서 기숙사비도 내기 어려운 형편이면 그것도 면제해 주었다.

훗날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한 교육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은 하와이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여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인 기독 학원을 통하여 양유찬(의사 및 주미 대사), 박관두(건축 설계사), 김찬제(화학 기술사) 등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한국과 하와이 교민 사회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승만의 나라 세우기는 언제나 사람 기르기로부터 시작했다. ...(중략(中略))...

 

18981년 동안 3개의 신문을 창간하는 신기록을 수립한 언론인 이승만은 하와이에서도 언론 활동에 주력했다. 1913920<태평양 잡지>를 창간했다. 이 잡지는 17년간 계속되었고, 1930<태평양 주보>로 바뀌었다. 주필로 활약한 이승만은 교포들의 가슴속에 기독교 신앙과 애국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일에 주력했다.

잡지 이름으로 태평양을 고집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하와이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승만은 태평양을 한민족이 살아가야 할 공간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더 이상 대륙의 끝자락이 아니라, 해양을 향한 교두보로서 지정학적 파워를 갖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표출한 것이었다(이한우, p.186).

오늘날 5대양 6대주로 뻗어 가는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품었던 꿈의 실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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