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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에서 시작한 최초의 남녀공학 ②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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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시작한 최초의 남녀공학 ② (지난호(12/23)의 이야기 끝부분: 이승만은 한인 중앙학원에서 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적인 교육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것은 남녀공학(男女共學)제도의 실시였다.) 이승만이 한인 중앙학원 원장에 취임하자마자 19명의 여학생이 모여들어 공부하겠다고 청해 왔던 것이 계기였다. 이승만은 그들을 위하여 기숙사를 마련하고 입학시켰다. 이로써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남녀(男女) 공학은 ‘남녀 7세 부동석’(不同席)이라는 유교적 개념에 깊이 물든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급진적인 조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국인들뿐 아니라 일부 미국인들까지도 상당히 반대했다고 한다. 이승만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녀 공학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승만의 선구적인 조치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남녀 공학 제도는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교포 사회에서도 대환영이었다. 이것은 한국 교육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역사적으로 이승만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남녀공학 제도를 도입한 인물로 당연히 기록되어야 한다(최영호, 유영익편, p.74). 그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최초’는 하와이에서도 붙여졌다. 한인 중앙 학원에서는 영어, 성경, 우리말, 한문, 한국 역사를 가르쳤고, 민족혼과 독립 정신 고취에 주력했다. 한인 중앙 학원 기숙사 학생이었던 박 에스더의 회고담이다.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서 비로소 애국심에 눈을 떴습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모두가 울었어요. 나는 그때 나이가 어려서 이승만 박사가 어떤 분인지 자세히는 몰랐어요. 그저 어른들이 애국자라고 해서 존경했을 뿐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말을 잘 듣지 않거나 화가 나면 양 볼을 부풀려 가지고 훅훅 하고 불어 대곤 했습니다. 어른들은 그분이 옥중에서 고문을 하고 많이 받아서 생긴 버릇이라고 하더군요.“(이한우,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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