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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와 105인 사건 ② 운영자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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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nfaith.com/bbs/bbsView/115/5822159

 

YMCA105인 사건

 

(지난호(10/14)의 이야기 끝부분

: 기독교 활동은 위험했다.)

 

총독부는 기독교인이라면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거의 민족주의자들이었고 기독교를 통해서 독립을 추구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독교를 탄압했다.

한 종교 간행물은 한국인들에게 내면의 마귀를 축출하라고 외쳤다. 이에 검열관은 여기서 말하는 마귀는 일본을 지칭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당신들은 일본에 대항하도록 조선인들을 사주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곧 모든 종교 간행물에 마귀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는 지시가 내려졌다.

또 다른 잡지는 봄에 싹트는 새 생명을 찬양하는 글을 실었다. 총독부는 그것에도 시비를 걸었다. 새 생명이란 말은 조선의 기독교도들이 궐기해서 새 정부를 세우도록 선동한 글이라는 이유였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일본을 비판한 숱한 강연과 인터뷰 기록을 남겼었다. 그러니 요시찰 인물인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집필과 강연에서 일제의 비위를 거스를 어떤 빌미도 주지 않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조심하고 주의하면서도, 타고난 활동가인 이승만은 멈추지 않았다.

1911년 여름, 이승만의 활동 궤적은 신들린 듯한 활약상을 보여 준다. 기차, , 말이나 나귀, 우마차, 가마 혹은 인력거를 타고 도합 37백 킬로미터를 여행했다. 13개 선교 구역을 방문하고 33회 집회를 열었으며, 7,535명의 학생을 만났다.

남으로 광주, 전주, 군산까지 내려갔고, 북으로는 평양, 선천까지 올라갔다. 이런 맹활약으로 지방 학교들에서도 모임이 만들어져, YMCA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승만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조선 총독부를 자극했다. 이에 일제는 조선 기독교 지도자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으니, 105인 사건이다. 유영익은 이승만이 너무 열심히 전국적인 조직을 만든 것이 105인 사건의 단서가 되었다고 지적한다(유영익 강연, 2008.4.28.).

일제가 뒤집어씌운 죄목은 어마어마했다.

19111111, 기독교인들이 데라우치 총독의 암살을 시도했다고 하여 무려 700여 명을 검거했다. 그들에게 무지막지한 고문을 가한 뒤에, 123명을 기소했다.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이가 3, 정신 이상을 일으킨 이가 4명이었으니, 얼마나 잔인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최종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된 이가 105명이었다.

탄압의 마수는 처음부터 이승만을 겨냥하고 있었다. 본인도 구속될 각오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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