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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린스턴, 우리 민족 최초의 국제법 박사 ②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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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우리 민족 최초의 국제법 박사 ② (지난호(9/09)의 이야기 끝부분: 논문의 내용은 국제법상 전쟁 중의 중립에 대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전쟁 시에 적대 행위의 대상 영역을 축소시키고 중립국의 통상의 자유를 확보하게 된 것은 인류에 대한 축복이라고 주장했다. 전쟁 중이라도 무역을 계속해야 하며, 중립국의 통상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것은 유럽 해양 강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인류에 기여한 공헌이었다. 일찍이 이승만은 감옥에서 쓴 「독립 정신」에서 나라를 개방하고 교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개방주의적인 면모가 박사 학위 논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논문의 결론을 인용한다. “대체로 중립법에 관한 미국의 영향력은 깊고 폭넓게 미쳤다. 현재의 중립 제도를 177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초기와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국제법의 다른 어떠한 분야보다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러한 발전이 모든 인류에게 대단한 축복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교전국의 작전 영역은 크게 제한되었고, 전시 중 국가 간의 평화적인 교류 수단은 괄목할 정도로 보장되었다. 무엇보다도 중립 교역의 자유가 확대되고 보장되었다. 유럽의 해양 강국들이 제기하였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지속적으로 자유주의적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이와 같은 성과를 이룩하는 데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논문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일간 이승만의 논문이 1912년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책으로 출판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학교 측에서 책으로 만들어 줄 만큼 학문적 중요성과 수준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이승만은 이때 받은 인세 중 일부를 자랑스럽게 간직했다. 훗날 1차 대전이 발발하며 공해(公海)상의 중립 문제가 부각되자, 이승만은 중립의 뛰어난 권위자로 자주 거론되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그를 인용할 정도였다. ... (中略)... 이로써 이승만은 서양사(西洋史)(특히 미국사), 신학, 정치학, 철학 등의 폭넓은 기초 위에 국제법을 익힌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제 정치학자가 되었다. 그는 우리 민족이 처음 배출한 만국 공법의 대가였다. ... (中略)... 이승만의 졸업식은 윌슨이 프린스턴의 총장으로서 진행한 마지막 학위 수여식이었다. 학위 수여식을 마치고 윌슨 총장이 주최한 리셉션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이승만은 등록금을 돌려달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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