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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우리 민족 최초의 국제법 박사 ① 운영자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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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nfaith.com/bbs/bbsView/115/5822153

 

프린스턴, 우리 민족 최초의 국제법 박사

 

 

(지난호(8/26)의 이야기 끝부분:

이승만은 총장의 집을 드나들며 총장 가족들과도 가까이 지내는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였다. 그를 높이 평가한 윌슨은 이승만을 주변에 미래 한국의 구원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2년 만에 박사 학위를 줄 수 있느냐는 이승만의 질문은 허세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2년 만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로써 미국의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단 5년 만에 마치는 진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미국의 최고 엘리트에게도 보통 12년이 걸리는 과정을 절반도 안 되는 시간에 해 치워 버린 것이다.

오늘날처럼 영어 학원과 강좌가 즐비한 시절도 아닌, 심지어 사전(事典)조차 없던 시기에 이루어 낸 엄청난 업적이었다. 고문을 당하고 6년 여의 세월을 갇혀 있었지만, 그의 지성은 전혀 녹슬지 않고 오히려 더욱 예리해졌던 것이다.

이승만이 졸업한 조지 워싱턴, 하버드, 프린스턴은 미국인들에게 선망이 대상이던 명문 학교들이었다. 대부분의 미국 도시에서 그 정도의 학벌을 지닌 인물은 도시 전체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최고 명문의 교육 과정을 5년 만에 끝내 버린 이승만의 실력은 훗날 미국인들을 상대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실제로 이승만을 상대한 미국의 고위 관료, 외교관들은 그의 탁월한 지성에 압도되었으며, “미국인보다 미국 정치·역사를 더 잘 아는이승만에게 경의를 표했다. 미국의 초대 대사로 한국에 부임한 무초이승만이 미국 역사를 이야기하면 넋을 잃어 가면서 들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승만의 박사 학위 논문은 <전시 중립론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이었다.

일차적으로 국제법에 관한 논문이었지만, 주제의 성격상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도 결부된 것이었다. 따라서 세 학과로부터 공동 승인을 받은 특이한 논문이었다.

이승만이 논문의 주제를 국제법으로 잡은 이유에 대해선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이승만이 박사 학위를 받고 90년이 지난 후, 그의 논문을 번역한 법학자 정인섭은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

한말(韓末)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이 이 땅에서 펼쳐졌고, 대한 제국의 국외 중립 선언은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을 목도한 그가 국제법 상의 전시 중립의 실체와 역사는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졌으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측이다.

(이승만 저, 정인섭 역(서울: 나남출판사, 2000), p.11)

 

논문의 내용은 국제법상 전쟁 중의 중립에 대한 것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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