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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워싱턴과 하버드 시절 ②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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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과 하버드 시절 ② (지난호(7/15)의 이야기 끝부분: 조선 정부의 특사로 미국으로 향할 때, 이승만은 민영환과 한규설의 밀서와 함께 선교사들의 추천서를 품고 있었다.) 미국 학교에 입학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받아 둔 추천서인데 무려 열아홉 통이나 되었다. 치밀하고 집요한 이승만의 성격을 보여 준다. 선교사들은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본국 정부의 훈령을 어겨 가면서 이승만을 도왔을 만큼, 그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미 한국에서의 기독교 전파에 상당한 공을 세운 것에 더해서, 장차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이끌 리더가 되리라고 예상했다. 그들은 미국의 대학들을 향하여 이승만에게 수학(修學) 기회를 줄 것을 요청하는 추천서를 기꺼이 작성해 주었다. 이승만 본인은 김윤정에게 당한 배신이 교육에의 열정을 더욱 불태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한국 사람이 저렇게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자기 친구들을 배반할 수 있단 말인 가...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처럼 저열한 상태에 빠져 있는 한, 한국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들에게 기독교 교육을 베풀기 위해 일생을 바 치기로 작정하였다.”(이정식, p. 219)
그가 처음 선택한 학교는 조지 워싱턴 대학이었다. 그 학교는 수도 워싱턴의 한복판, 백악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미국 정치의 중심지였기에 정치 지망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가 나이 서른에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미국 교육은 처음이었지만, 그의 교육 수준은 대부분의 교수들을 능가했다. (로버트 올리버 저, 황정일 역. p. 109)
이승만은 장차 기독교 교역자가 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여 목회 장학금을 받았다.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도서관 사용료로 한 학기에 1달러만 내면 되는 좋은 혜택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이승만은 먹지도 못하여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강의를 듣는 일이 허다했다.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이승만은 구약 언어학을 두 과목 수강하기도 했다. 그는 배재 학당에서의 수업을 인정받아 2년 반 만에 학부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워싱턴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미국 정치의 내막을 파악하는 안목을 길렀던 것도 커다란 수확이었다. 이승만의 학업은 강연 활동과 함께 진행되었다. 학부 시절 그는 미국의 교회와 YMCA에서 한국 선교와 독립에 관해서 강연했다. 총 회수는 무려 170여 회에 달했다. 1907년 6월 13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YMCA에서 행한 이승만의 강연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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