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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페리얼 크루즈, 대한제국 침탈 외교 ④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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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크루즈, 대한제국 침탈 외교 ④ (지난호(6/03)의 이야기 끝부분: 결국 대한제국 특사로서의 활동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 그것은 실패로만 끝난 실패는 아니었다. 그것은 훗날 ‘외교의 신(神)’으로 격찬 받은 이승만이 탄생하기 위한 진통의 시작이었다.) 이승만은 이 사건을 시작으로, 반세기에 걸쳐서 외교 관계에서 힘이 없는 나라가 얼마나 서러운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강대국들이 흥정의 대상으로 약소국을 얼마든지 팔아넘길 수 있다는 것도 뼈아프게 자각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국제 관계의 현실을 직면하며 강대국의 논리를 파악하게 된다. 그런 과정과 시련이 쌓이고 모여서 이승만이라는 걸출한 외교가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이승만은 훗날 미국이 1882년의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을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적절하게 활용했다. 시간은 점점 더 많은 것을 보여 준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처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 시간은 강력한 폭로자이다. 2009년에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가 쓴 「Imperial Cruise」의 한국어 번역판(송정애 역. 서울: 프리뷰, 2010)에는 이런 부제(副題)가 붙어 있다- “대한제국 침탈 외교 100일의 기록.” 제목이 뜻하는 대로, 제국주의를 싣고 갔던 유람선은 1905년 태프트가 탔던 바로 그 유람선이다. 하와이의 사탕 수수밭에서 고생하던 우리 선조들이 피땀 흘려서 모은 한 푼 두 푼을 내놓아 성대한 환영 대회를 열었던 그 유람선이며, 조국의 멸망을 막으려는 애타는 염원을 전달했던 그 유람선이다. 제국주의 순방단의 비밀 임무는,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미국의 필리핀 강점, 일본의 조선 강점을 서로 인정하는 밀약을 타결 짓는 것이었다. 루즈벨트는 맏딸 앨리스를 동승시켜서 비밀 업무를 은폐하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호도하는 “바람잡이” 역할을 맡겼다. 한국어판에 붙은 제목처럼, 그것은 대한제국 침탈 외교였다. 7월 14일에 하와이에서 우리 교민들의 눈물 어린 간청을 듣고 대통령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써 주며 동정심을 보였던 태프트는 다음날 호놀룰루를 떠나서 7월 25일에 요코하마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틀 뒤인 7월 27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는다. 그가 조선인들에게 보여 준 태도는 철저한 위선이었고 기만이었다. 순방단은 상하이에서 두 팀으로 나누어졌다. 태프트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루즈벨트의 딸 앨리스는 9월 19일 서울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하와이 교민들이 열렬하게 태프트를 환영했던 것처럼, 고종 황제도 앨리스를 국빈으로 대접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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