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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페리얼 크루즈, 대한제국 침탈 외교 ③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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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크루즈, 대한제국 침탈 외교 ③
(지난호(5/20)의 이야기 끝부분: 이것이 그 당시 미국인들의 적나라한 시선이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는데다가, 미국의 특별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도 않고, 악행이나 저지르고 있는 조선 정부를 돕기는 어려웠다.) 당시의 국제 정세 역시 조선에게 불리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팽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러시아는 국제적인 압력을 가하여 일본이 부당하게 빼앗은 요동 반도를 중국에 돌려주도록 했다. 그러고는 3년 후에 자신들이 요동 반도를 차지하고 군대를 주둔시킴으로써, 만 천하에 야욕을 드러냈다. 이에 러시아의 남진(南進)을 막고자 영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었고, 미국 역시 같은 편이었다. 이는 러일 전쟁 당시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적극 지원한 것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더군다나 미국 대통령 디어도어 루즈벨트는 일본의 발전상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후발 주자가 메이지 유신 이후로 눈부시게 성장하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반면에, 조선의 후진성에는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해서 일본이 한반도를 가져야 한다.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싶다. 조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먹 한 번 휘두르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루즈벨트는 말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한국 침탈을 돕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 사실은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1924년에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존스 홉킨스대학교의 데넷 교수가 루즈벨트의 서한집에서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폭로했다. 그 내용은, 1905년 7월 27일, 도쿄에서 일본 수상 가쓰라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가, 일본이 한국을, 미국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것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7월 31일, 루즈벨트는 전보를 보내어 “태프트가 한 말에 모두 동의한다”고 밝혔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태프트와 루즈벨트가 사살에 확인 사살까지 한 셈이다. 이처럼 미국은 이미 일본을 밀기로 결정해 놓은 상태였다. 따라서 이승만의 노력이나 김윤정의 배신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승만도 훗날 이 점을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882년에 체결한 한미 수교 조약은 한갓 제스처(gesture)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그 조약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어리석고 순진한 탓이었다.” (이정식, 유영익 편(서울, 2003), p.407) 결국 대한 제국 특사로서의 활동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 그것은 실패로만 끝난 실패는 아니었다. 그것은 훗날 ‘외교의 신(神)’으로 격찬 받은 이승만이 탄생하기 위한 진통의 시작이었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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