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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페리얼 크루즈, 대한 제국 침탈 외교 ①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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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크루즈, 대한 제국 침탈 외교 ①
(지난호(4/22)의 이야기 끝부분: 정신을 가다듬은 이승만은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고 애원하고 협박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경찰을 부르겠다는 김윤정의 위협을 받으며 공사관에서 쫓겨났다.) 시간은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때는 보이지 않고 알 수도 없었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다. 이승만의 해프닝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의 이승만은 김윤정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가 배신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훗날 밝혀진 사실들은, 김윤정이 친일파가 아니고 애국 지사였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을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 준다. 민영환, 한규설, 이승만이 기대를 걸었던 조미 수호 조약이 체결되던 188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조선 조정은 순진할 만큼 솔직했다. 미국 해군 슈펠트(Shufeldt) 제독에게 서구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불신을 솔직히 토로했다. 그러나 실상 자신들의 가장 큰 염려는 일본의 침략이라는 점도 그대로 밝혔다. 그들은 조미 조약이 외세 침략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되지 않는 한, 외국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슈펠트는 바로 그것이 조미 조약의 목적이라고 확약했다. 그의 말이 꼭 외교적인 수사(修辭)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미국 상원에서 조약을 심의하는 과정에서도 슈펠트가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선과 미국은 솔직한 의견을 주고받고 약속을 맺었다. 문제는, 두 나라가 약속 자체를 보는 시각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조선 수뇌부는 동양적 국제 질서의 오랜 관행이었던 사대주의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과의 조약을 과거의 청나라 같은 대국(大國)과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즉 미국같이 풍요하고 강한 나라와 조약을 맺으면,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준 것처럼 유사시(有事時)에 미국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선 왕조의 500년 사대주의가 낳은, 의존심에 찌들대로 찌든 시각이었다. 하지만 미국에게 종주국이니, 사대주의니 하는 동양적 질서는 낯선 것이었다. 조약을 맺었다고 해도, 그 기본 전제는 자신의 나라는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약 한 번으로 남의 나라 안전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약육강식이 극심하던 당시의 국제 질서로 볼 때 비현실적인 생각이었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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