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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 감옥, 우리 민족의 골고다 ②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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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감옥, 우리 민족의 골고다 ② (지난호(12/31)의 이야기 끝부분: 이러므로 사람의 극히 어려운 지경은 곧 하나님이 감화시킬 기회라 하나니, 예컨대 논에 물이 마르고 뜨거워 고기가 살 수 없게 된 후에야 스스로 새 물길을 얻어 강과 바다를 찾아갈지라... 대한 사람들의 새 물줄기는 예수교라.”) 셋째로, 민족을 향한 희망이 있었다. 고난 속에서 이승만을 만나 주신 하나님은 동일하게 고난당하는 우리 민족을 만나 주실 수 있다. 고난이 있어서 이승만이 하나님을 찾았던 것처럼, 민족의 고난이 하나님을 찾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이승만은 믿었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 이승만은 민족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전개했다. 1908년 6월 15일 피츠버그 기독교 대회에서 행한 연설의 기록이 남아 있다. “자기들의 나라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어둠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자기들을 들어 올려 줄 위대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갑자기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는 무슨 힘도 그들을 들어 올려 줄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썩어빠진 정부는 정화되어야 하고, 그들의 마음과 힘은 갱생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자나 부처님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한국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만이 참다운 구원을 주실 수 있고, 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기회를 주셔서 한국 사람들이 민족적 오만과 조상 숭배와 전래의 미신을 버리고, 빈 마음과 겸손한 정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감옥 생활은 이승만에게 큰 인물이 되도록 연단 받는 큰 기회였다. 마찬가지로, 나라를 잃어버리는 고난이 하나님이 주신 큰 기회가 되어, 민족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넷째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고난 받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입었다. 훗날 정치가, 외교가, 교육자로 다양하게 활동했던 이승만은 감옥에서 평생의 동지들을 만났다. 미국 유학을 떠날 때 감옥의 부서장 이중진이 여비를 대주었다. 하와이를 독립 운동의 근거지로 삼도록 박용만이 충고했다. 한성 정부의 집정관 총재로 추대하여 훗날 임시 정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을 놓아 준 이는 이상재였다. 그들은 모두 한성 감옥에서 만난 ‘복당 동지’들이었다. 이는 성서의 요셉을 연상케 한다. 요셉은 억울하...(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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