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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북한 단독 정부 수립 결정 운영자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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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북한 단독 정부 수립 결정

 

이승만은 미국과 소련이 한국인의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한국인의 단결을 호소하였다. 그래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구호가 나왔다. 그리고 그는 19451023일에 국내의 모든 단체들의 대표들을 모아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만들어 지방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지방의 단체들이 이승만의 명성 때문에 자발적으로 호응해 왔다.

 

19451123일에 마침내 중경 임시 정부의 김구 일행이 귀국했다. 미군이 김구의 귀국을 추진한 것은 미 군정의 협력자로서 공산주의자들을 견제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파의 한민당도 환영하였다. 중국의 장개석은 비행기 2대로 상해까지 태워 주는 한편, 귀국 후 중국 정부와의 신속한 연락을 위해 무전사 3명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장개석의 그와 같은 환대에는 임정 세력이 한국에서 집권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 중장이 보낸 미군 비행기로 상해에서 임정 요인들은 서울에 올 수 있었다. 김구 역시 이승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임시 정부의 요인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임시 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미 군정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다. 그러나 귀국 직후 임시 정부는 경교장에서 각료회를 여는 등 정부로서 행동하려 하였다. 이승만도 임시 정부의 주미 외교 위원부 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첫 각료 회의에 참석했다. 123, 임시 정부는 미 군정 측에게 행정권을 넘겨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한 요구에 대해 미군은 38선 이남에서는 미 군정만이 유일한 정부임을 확인함으로써 임시 정부의 인정을 거부했다. 송진우가 이끄는 한민당도 임시 정부를 우파로 보고 지지하고 나섰다. 그런데 좌파 공산 세력도 임시 정부와 손을 잡으려고 했다. 임시 정부는 좌우 합작 체제였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임시 정부는 좌익들을 대등하게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작은 실현되지 못했다. 온건한 중도파인 안재홍의 국민당만이 김구의 한독당과 통합했을 뿐이다.

 

당시 미 국방부는 한반도를 중요한 군사적 거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군은 한국인들에게 빨리 남북한 통일 정부를 세워 주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남북 통일정부의 수립은 쉽지 않았다. 북한을 점령하고 있는 소련군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소련군은 동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공산 정부, 또는 공산 단독 정권을 세울 작정이었다. 그것은 일본이 항복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1945920일에 스탈린이 소련국 연해주군관구 사령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그런데도 순진하게도 미군은 소련군의 협조를 얻어 남북 통일 정부를 세워 보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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