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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수호를 위해 내린 조치(4가지) (1)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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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수호를 위해 내린 조치(4가지) (1) 1950년에 일어난 6.25한국전쟁은 임진왜란 이후 민족 최대의 위기였다. 북한 공산군의 기습을 받아 전쟁 발발 3일 만에 전방의 6개 사단이 전멸했고, 수도 서울이 점령당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을 어떻게 수행해 나갔을까? 결론적으로, 이승만은 40년간의 독립 운동을 통해 단련된 평정심을 잃지 않고, 국가 지도자로서 취해야 할 조치를 의연하게 처리했다. 이승만이 전쟁 초기의 위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국가 수호를 위해 내린 조치는 크게 4가지다. 첫째,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 세계 대전의 빌미를 제공하는 장(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한국민은 전 국민이 참여하는 총력전을 펼친다. 셋째, 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을 남북 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겠다. 넷째, 이 위기를 타개하고 북진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과 유엔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이와 같은 판단과 조치는 전쟁 발발 후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전쟁 시작 약 7시간 후인 6월 25일 오전 11시 35분에 경무대에서 무초 미국 대사의 방문을 받고, “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의 배경이 되었던 제2의 사라예보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이 기회를 이용하여 ‘한국의 통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승만은, 북한의 전면 기습 남침이 신생 대한민국에게 최대의 위기임에 틀림없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돌멩이나 몽둥이라도 들고 나와 싸울 것이다”라며 총력전의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런 연장 선상에서 이를 최대한 이용해 6.25전쟁을 남북 통일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했던 국가 지도자였다. 어느 누구도 기습 남침이라는 위급한 처지에 상상도 못할 생각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러한 생각은, 반드시 달성해야 될 전쟁 목표와 국가 과제였던 것이다. 이승만은 당장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그는 무초 대사와 회담을 마친 후, 주미 대사관의 한표욱 참사관과 장면 대사에게, “우리 국군은 용맹스럽게 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 격퇴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든 미국의 원조가 시급히 도착하도록 노력해 달라”라고 지시했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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