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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지옥에서 회심하다①,②,③ 운영자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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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nfaith.com/bbs/bbsView/115/5752690

 

생지옥에서 회심하다

 

한성 감옥은 끔찍했다. 이승만을 면회하러 갔던 미국 선교사 에디(Eddy)의 기록이다--“그들의 감옥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다자백을 받아 내거나 남을 연루시키기 위해 자주 고문을 가하고죄수들을 축사(畜舍)에 가둔 소떼처럼 이리저리 몰아붙인다. ... (後略) ....”

... (中略) ...

이승만의 목에는 무게 10킬로그램의 칼이 씌워졌다.

손에는 움직일 수 없도록 수갑이 채워졌다.

발에는 꼼짝 못하도록 족쇄가 물려졌다.

칼을 벗고 손발이 풀리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가운데 단 5분뿐이었다온몸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감옥에는 바닥조차 없었다.  

 

생지옥에서 회심하다

 

(지난호(4/23)의 이야기 끝부분

이승만의 목에는 무게 10킬로그램의 칼이 씌워졌다. 손에는 움직일 수 없도록 수갑이 채워졌다. 발에는 꼼짝 못하도록 족쇄가 물려졌다. 칼을 벗고 손발이 풀리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가운데 단 5분뿐이었다. 온몸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감옥에는 바닥조차 없었다.)

 

살인범과 같은 중죄인들은 널빤지도 깔지 않은 흙바닥에 던져졌다.

인간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이다. 떨치며 일어나 용감하게 자신의 길을 달려갔던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비로소 신()을 찾는다. 몸부림쳐도 발버둥 쳐도 안 되는 곳, 몸부림치고 발버둥 칠 힘조차 없는 상황, 그럴 만한 몰리적인 공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한성 감옥에서 이승만은 성경을 찾았다. 성경을 구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나는 그 후 성경을 구하려고 했으나, 옥중에서는 종교 서적이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았고 또한 선물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밀 방법을 통해 셔우드 에디(S. Eddy) 박사가 조그마한 <신약성서>를 보내왔는데, 그것을 받은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머리에 칼을 쓰고 손에는 수갑을 차고 있으니, 한 장을 읽고 다음 장을 넘길 수가 없다. 누군가가 옆에서 넘겨 주어야 한다. 동료 죄수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성경을 읽는데, 예전과는 달리 새롭게 읽혀졌다.

나는 감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면 성경을 읽었다. 그런데 배재 학당에 다닐 때는 그 책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데, 이제 그것이 나에게 깊은 관심거리가 되었다. 어느 날 나는 학교에서 어느 선교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성경을 읽다가 설교가 떠오른 결정적인 순간을 이승만은 회고한다.

내가 품고 있는 질문은 꼭 한 가지이제 나는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학교 예배실에서 들은 설교를 기억하고, 목에 씌운 형틀에 머리를 숙이고 평생 처음으로 기도했다. , 하나님, 나의 영혼을 구해 주시옵소서.

, 하나님, 우리나라를 구해 주시옵소서.’

그랬더니 금방 감방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고, 나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평안이 깃들면서 나는 완전히 변한 사람이 되었다.“

 

그날 완전히 변한 것은 이승만뿐이 아니었다. 

 

생지옥에서 회심하다

 

그랬더니 금방 감방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고, 나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평안이 깃들면서 나는 완전히 변한 사람이 되었다. “그날 완전히 변한 것은 이승만뿐이 아니었다.)

 

먼저 이 나라의 선교 역사가 바뀌었다. 이승만은 조선의 양반, 왕족, 상류층 출신으로는 국내에서 개종한 첫 번째 개신교 신자였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 언론인, 연설가들 중에서도 국내파로는 첫 번째였다.

이승만보다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인 양반 지식인으로는, 1883년 동경에서 개종한 이수정(李樹廷)1885년 샌프란시스코의 서재필, 1887년 상해의 윤치호 등을 꼽을 수 있다. 국내외를 통틀어 양반 개종자 자체가 몇 사람 안 되었고, 이승만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해외 체류 시절에 기독교인이 되었다. 유교 문화와 전통이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던 조선 분위기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 첫 스타트를 이승만이 끊었다.

그 영향력은 선교와 종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요 건국 대통령으로 성장해 간 그의 발자취와 함께, 기독교는 이 나라 역사 전체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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