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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적이 되어 고문당하다 ③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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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이 되어 고문당하다 ③ (지난호(4/9)의 이야기 끝부분 영화 같은 장면으로 전개된 탈옥 작전은 허무하게 끝났다. 1월 30일, 이승만 일당의 탈옥은 실패했다. 역적에다가 탈옥까지 시도했으니, 이제 이승만은 악형(惡刑)을 피할 수 없었다. 다시 붙잡혀 온 이승만을 맞이한 것은 무시무시한 고문과 악명 높은 한성 감옥이었다.) 이승만을 고문한 자는 박달북(朴達北)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담은 기록이다- -“그는 왕당파로, 나와 가장 원한이 사무치는 원수였다. 박은 나를 잡아다 놓은 후에 황실에 연락을 해서 황제로부터 고문을 하라는 지시를 전화로 받았다. 그들은 나를 캄캄한 방에 눕혀 놓았는데, 나는 그 다음날 아침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를 못했다. 그리고 나는 또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때 나는 그 감옥으로 다시 끌려가기 전에 얼마나 죽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나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풀어대는 그들은 격분한 동물들 같았다.“ 이승만이 끌려간 방은 감옥 안쪽의 취조실이었다. 그곳을 둘러싼 두터운 돌 벽은 일종의 방음 장치였다. 고문당하는 죄수의 비명 소리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승만이 받았던 고문은 여러 가지였다. ... (中略) ... 고문의 후유증은 그 후로도 오래 남아 있었다. 손이 망가진 이승만은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었다. 고문당하기 이전의 서예 실력을 되찾은 것은 무려 40년이 지난 뒤였다. 훗날 이승만은 감정이 격해질 때면 아플 때의 버릇이 살아나, 무의식적으로 손가락 끝을 입으로 불었다. 고문의 흔적은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 세계에도 깊이 박혀 있었다. 오십 년이 더 지난 뒤인 77세 때(편집자 註: 1951년경)에도 그는 가끔씩 꿈속에서 감방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때의 일을 물으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잊어버리게 좀 놔둘 수는 없나...” 하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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