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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이 되어 고문당하다 ② 운영자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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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이 되어 고문당하다

 

(지난호(4/2)의 이야기 끝부분

하지만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에게 그 정도의 노련함까지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다. 물불 가리지 않는 이승만은 결국 위험한 선을 넘었다.)

 

1898년이 저물어 가던 12월 말, 이승만은 당시로선 하늘을 거역하는엄청난 거사에 가담했다. ‘유약(柔弱)하고 몽매(蒙昧)고종 황제를 폐위하고 그 대신 의화군(義和君) 이강(李堈)을 새 황제로 추대하면서 박영효(朴泳孝) 중심의 강력한 개혁정부를 수립하려던 쿠데타 음모에 참여한 것이다. 이승만은 일본에서 밀입국한 이규완(李圭完), 황철(黃鐵) 등 박영효 지지 세력과 접촉하였다. 하지만 음모가 사전에 누설되면서 지명수배 되었다.

이승만은 급히 배재학당으로 도피했다. 서양 선교사가 세운 곳이어서 일종의 치외법권(治外法權)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잠복 18일째인 189919, 미국인 의사 셔먼(Harry C. Sherman)이 왕진에 나섰다. 한국인을 치료하러 가는 길에 통역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도피 생활에 좀이 쑤시던 이승만이 따라나섰다.

나름대로 순검의 눈을 피한다고 했겠지만, 그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1898, 파란만장한 해였다. 드라마와도 같은 이승만의 대중 운동은 불꽃처럼 일어났다가 연기처럼 소멸했다.(전상인, 유영익 편, p.390)

 

서양 의사를 돕다가 체포되었으니, 선교사들은 미안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승만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미국 공사와 경무청의 고문관은 고문이나 부당한 형벌을 막기 위해 매일같이 면회를 왔다. 외교관과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이승만이 심각하지 않은 정도의 처벌을 받고 풀려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독립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감옥 밖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자신의 연설을 듣고 지도를 받기 위해 기다린다고 믿었다. 젊은이다운 자존심과 독립심, 공명심의 발로(發露)였다. 함께 투옥된 최정식, 서상대도 탈옥을 부추겼다. 이때 배재학당의 절친한 동료였던 주시경이 육혈포(六穴砲)(권총) 2정을 감옥에 밀반입시켰다.

영화 같은 장면으로 전개된 탈옥 작전은 허무하게 끝났다. 130, 이승만 일당의 탈옥은 실패했다. 역적에다가 탈옥까지 시도했으니, 이제 이승만은 악형(惡刑)을 피할 수 없었다. 다시 붙잡혀 온 이승만을 맞이한 것은 무시무시한 고문과 악명 높은 한성 감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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