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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협회와 만민 공동 회의 투사 ③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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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협회와 만민 공동 회의 투사 ③
(지난호(2/26)의 이야기 끝부분 사기가 오른 이승만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고종 황제는 말 바꾸기의 명수였다. 개화파에게 여러 번 개혁을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이승만은 고종이 독립 협회에게 약속한 개혁 방안인 헌의(獻議) 6조의 실천을 요구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고종 황제와 수구파는 본때를 보여 주기로 작정했다. 수구파가 동원한 물리력은, 유서 깊은 보부상(褓負商)들이었다.) 보부상은 보따리에 물건을 싸서 들고 다니는 보상(褓商, 봇짐장수)과, 등에 지고 다니는 부상(負商, 등짐 장수)를 합한 말이다.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대수롭지 않은 행상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도로와 운송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그들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국가가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해서 보부상들을 보호하는 한편, 국가적 과제에 동원하기도 했다.(中略 대한 제국 시기에 보부상은 황국 협회(皇國協會)라는 조직으로 결성되어 있었다. 물건을 들고 혹은 지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던 만큼, 보부상들은 강건한 사나이들이었다. 국가의 물리력으로 동원될 만큼 전투력이 뛰어나기도 했다. 고종 황제는 독립 협회의 시위 현장에 그들을 투입했다 1898년 11월 21일, 이승만이 왕궁 앞에서 연설하고 있을 때, 보부상들이 습격했다. 치고 박는 유혈극이 벌어졌다. 보부상들의 선두에는 두목 길영수가 있었다. 위급한 순간을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길영수가 인솔하는 보부상들이 서대문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집합 장소에 도달하자, 공동회에 모였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는 길영수가 보부상들의 선두에 서서 따라오는 것을 보자 흥분하여 자제를 잃고 그에게 달려가서 발로 힘껏 차 버렸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나를 두 팔로 꽉 껴안고는 ‘이승만 씨, 진정하고 빨리 달아나시오’ 한다. 내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나는 적들의 가운데 혼자 있었다. 나는 보부상들이 밀려오는 쪽으로 가서, 그들이 길을 막아 놓은 작대기를 차 버리고 배재 학당 쪽으로 걸어갔다. 시골에서 온 보부상 장사들은 나를 알지 못했거니와, 내가 그들 속을 그렇게 걸어갈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만일 남들이 달아난 쪽으로 가려고 했다면 그들이 나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 자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할 새도 없었다. 이때도 ‘보이지 않는 그의 손’이 나를 인도해서 구원해 준 것이 틀림없다.“ 길영수와의 격투에서 맞아죽지 않은 것을, 훗날 이승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기억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보호했다고 기록했다. 그에게도 보이지 않았으니, 다른 이들에게는 알려질 수도 없었다. 신문에는 이승만이 길영수에게 덤벼들었다가 맞아죽었다고 보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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