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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협회와 만민 공동 회의 투사 ② 운영자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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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협회와 만민 공동 회의 투사

 

 

경무청 앞에 집결한 군중들은 이승만의 지도에 따라 연좌 농성을 벌이며 구호를 외쳤다. 독립 지사들을 전원 석방하라. 국왕이 약속한 개혁을 실천하라.”

이승만을 아끼는 이들은 위험한 행동을 만류했다. 아버지까지 찾아와 그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승만아, 너는 6대 독자라는 것을 기억해라.그래도 이승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군중 속에는 갖가지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난무했다. 국왕이 시위대 사살 명령을 내렸다느니, 고종이 이승만에게 고위직을 제의했고 뇌물까지 주었다느니 하는 뜬소문이 떠돌았다. 실제로 왕실 측근들이 찾아와 회유 공작을 펴기도 했다.

이승만은 날마다, 쉴 새 없이 연설을 계속했다. 밤이면 모닥불을 피워 놓고 시위대를 향하여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흩어지지 말라고 외쳤다. 여기에서 이승만을 대표하는 구호가 탄생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인보길, 2011, p.163)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뒤, 기나긴 망명 생활에서 돌아온 칠순(七旬)의 이승만이 해방된 조국을 향하여 제 1(一聲)으로 외친 바로 그 말이었다.

 

집권층은 무력 진압을 시도했다. 추위와 배고픔과 졸음에 시달리는 시위대 앞에 군악대를 앞세운 군부대가 나타났다. 연설하던 이승만은 그대로 돌진했다. 군인들을 발로 차며 돌아가라고 외쳤다. 다음날의 신문은 이승만 앞에 싸움패라는 별명을 붙였다. 동양과 서양의 학문에 두루 정통했던 이 나라 최고의 지식인이 싸움패가 되어야 했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때 수구파 정부는 무력 사용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외국 사절들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5일간에 걸친 투쟁의 승리자는 이승만과 시위대였다. 고종은 구금된 독립 협회 지도자 17명을 석방했다. 이승만은 훗날 기록한 <청년 이승만 자서전>에서 이 장면을 자랑스럽게 회고했다.

그 밤에야말로 나는 참으로 득의 충천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였던 것이다.”(원영희, 최정태 편집, p.73)

사기가 오른 이승만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고종 황제는 말 바꾸기의 명수였다. 개화파에게 여러 번 개혁을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이승만은 고종이 독립 협회에게 약속한 개혁 방안인 헌의(獻議) 6조의 실천을 요구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고종 황제와 수구파는 본때를 보여 주기로 작정했다. 수구파가 동원한 물리력은, 유서 깊은 보부상(褓負商)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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