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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 시대를 연 특종 기자 ①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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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시대를 연 특종 기자 ①
<협성회 회보>도 배재 학당과 아펜젤러 학장에게 부담을 주었다. 날카로운 논설이 정부를 자극하여 선교사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아펜젤러는 신문의 내용을 부드럽게 할 것을 당부했지만, 열혈 청년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협성회 회보>는 협성회와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협성회가 배재 학당의 울타리를 벗어나 독립 협회로 성장한 것처럼, <협성회 회보>는 <매일 신문>으로 발전했다. 여기에서 또 한 번 ‘최초’가 등장한다. 1898년 4월 9일에 창간된 <매일 신문>은 한국 최초의 일간지였다. 주간지가 일간지로 성장해 나간 것은 그만큼 반응이 좋았다는 뜻이다. 신문을 매일 발간해도 된다고 판단할 정도로, 제작진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이승만은 <매일 신문>의 사장 겸 주필이었다. 이로써 이승만은 ‘한국 최초의 일간 신문 편집자’가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에 일간지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는 사소해진 것이, 역사에서는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야 날마다 신문이 배달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당시에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새로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신문은 시대의 거울이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지식인 윤치호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몇 백 달러나 몇 병의 샴페인 혹은 맥주 몇 병만으로도 일본 사람, 혹은 러시아인, 아니 누구든지 한국 내에서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 이권(利權)을 살 수가 있다.” 윤치호의 글은 약간 과장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부패는 심각했다. 정부는 백성들에게는 무자비하면서도 외세에 대해서는 무능력했다. 한반도의 각종 이권은 허술하게 외국으로 넘겨졌다. 우리 땅에 와 있던 외국인들의 행패도 극심했다. <매일 신문>은 그와 같은 현실을 고발했다. 우리 언론의 역사에 대한 연구자로 손꼽히는 정진석(鄭晉錫)은 “<매일 신문>은 외세에 저항하는 한국 신문의 전통을 확립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한다.(정진석, 원영희‧ 최정태 편집, 1995. p.40)
<매일 신문>은 1898년 5월 16일자 1면에 러시아와 프랑스가 이권을 요구한 외교 문서를 폭로했다. 러시아는 목포와 진남포 조계지(租界地)의 사방으로 10리를 차지하려고 했고, 프랑스는 평양의 석탄광을 채굴하여 경의선 철도 부설에 사용하려고 했음을 보도했다. 이 기사는 백성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즉각 독립 협회가 들고 일어났다. 정부 측에 사실을 밝혀 줄 것을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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