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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방해한 미국 내 공산주의자들 운영자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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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방해한 미국 내 공산주의자들

 

 

1910년에 일본은 한반도를 합병(合倂)하고, 지속적으로 서구 열강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당시 세계 최고 패권국인 영국과 미국이 일본의 동맹국들이었다. 강력한 일본을 기반으로 태평양에 평화를 이룩한다는 것이 미국 외교의 기본 방침이기도 했다. 일본은 인구는 늘어나는데 땅은 좁아서,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팽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많은 열강들이 공감을 했지만, 사실 그들 모두 한통속이었다.

 

1938년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주변국들을 병합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예감한 이승만은 하와이를 떠나서 백악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는 일본이 곧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경고의 글을 써서, 저명한 기자인 에드윈 힐을 통해 여러 신문에 싣게했다. 19416, 이승만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일본에 대항하는 한국인들의 투쟁 상황을 설명하고 임시 정부의 승인과 무기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국무부를 통해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동안 이승만은 그의 명저 Japan Inside Out"1941년 여름에 뉴욕에서 출간했다. 그 책을 통해 이승만은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를 역사적으로 밝히고, 일본이 곧 미국을 공격하게 될 것임을 경고했다. 그의 예언대로 6개월도 안 되어 127일에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하자,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김구의 임시 정부와 이승만은 서로 협력하게 되었다. 이승만은 독일의 폴란드 공격이 있기 직전인 19398월에 김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중국이 일본에 대항해 싸운다 할지라도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고, 따라서 미국 국민의 동정을 얻기 위한 대대적인 선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장개석에게 알려 주라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승만은 미국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지식인이었지만, 외교관의 일을 하면서도, 독립 운동가 중 유일한 무국적자였다. 무국적자로서 미국 관리들을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로버트 올리버 박사를 로비스트로 고용하였다.

로비의 목표는 '상해 임시 정부를 미국 정부가 승인하고, 무기 대여법에 따라 무기를 공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미국은 한국군을 일본과의 전쟁에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패망 뒤에 소련의 한반도 점령과 공산화를 막는 데도 활용함으로써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미 국무부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의 방해 때문이었는데, 미 국무부 고위 관료였던 알저 히스는 소련의 고정 간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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