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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된 역사 교과서에 투영된 김일성과 이승만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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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역사 교과서에 투영된 김일성과 이승만 대한민국 서울 소재 한 유명 대학 교수의 역사 왜곡 강의 내용이 여러 신문에 소개되었다. “김일성이 총을 쥐고 만주에서 피를 흘리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이승만이는 미국으로 도망가서 카바레서 블루스나 추고 양키 기생들하고 춤이나 추면서 ‘마이 컨트리 X됐다’ 하고 있었겠지?”라는 말을 했다. 여기 저기서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한 대학에서 보여 준 역사 왜곡의 한 단면이다. 실제 더 심각한 것은 이들 지성인들이라고 일컫는 교수와 대학생들이 보여 준 역사왜곡과 웃음은, 그들이 청소년 시절에 학교에서 배웠던 잘못된 역사 교과서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김일성은 이승만과 비교조차 할 수 없고 비교 대상도 안된다. 앞으로 김일성에 대해 언급하겠지만, 김일성의 행적은 우리 민족과 상관없는 자이며, 오히려 ‘김일성 민족’이라는 우상화로 가득 부풀려진 자이다. 이승만은 1875년에 태어났고, 김일성은 1912년에 태어났으므로 서로간 37년의 차이가 난다. 태어난 연도를 기준으로 김일성과 비교할 수 있는 인물들이 있다면, 1910년에 태어난 이병철(삼성 창업주), 1915년 정주영(현대 창업주), 1917년 박정희(대한민국 대통령), 1920년 백선엽 장군이 있다. 1910년대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가장 암울하고 비극적인 시대였다. 일본은 ‘욱일승천’하는 중이었고, 우리는 1910년 한일 병합으로 국권을 빼앗겼다. 1919년에 고종 황제가 (일본의 독살(설)로) 갑작스럽게 서거했다. 고종 황제의 죽음은 “정말로 나라를 빼앗겼다”는 것을 일깨워 준 사건이 되었다. 1919년 3·1독립운동으로 국권 회복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일제의 탄압이 더욱 가혹해지자, 3·1운동 이후 민족의 허탈감은 극도에 달했다. 이때 백성의 마음을 강하게 유혹한 것이 바로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김일성’은 젊어서부터 사회주의 공산주의자였으며, 항일 독립 운동에 관심없었다. 오히려 소련군 대위가 되어 33세에 평양에 입성하였으며,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해 수백만 명을 살해하고 북한 주민 300만 명을 굶겨 죽이고 600만 명을 굶주리게 한 민족 최대 비극의 지도자로 기록되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에서 반도체 기술을 도입하여,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500원 지폐 한 장으로, 지금의 세계적인 전자, 자동차, 조선, 건설 사업으로, 대한민국 근대화와 현대화를 이룬 세계 최정상급 경영자로 기록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고, 전국에 쥐잡기운동을 벌여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팔고, 돈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만들어서 외국에 팔아, 1965년 수출 12억 달러를 달성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의 발전은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하여 온 국민이 확고한 자주성의 바탕 위에서 함께 울고, 함께 땀 흘려 일한 결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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