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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보다 2년 앞선 이승만의 선언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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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다 2년 앞선 이승만의 선언
중국의 ‘죽(竹의) 장막’을 열게 만든 것은 미국의 헨리 키신저였다. 1971년 7월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여 미 대통령 닉슨의 중국 방문과 대중 수교를 주도하였고, 1972년 중동 평화 조정에 힘썼으며, 1973년 1월 북 베트남 공산당(월맹)과 접촉하여 미국과의 평화 협정을 체결하게 하여 그해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미국과 월맹 간 휴전 협상의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 국무부 장관 헨리 키신저는 바로 한 달 후인 73년 11월 한국을 방문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앞으로 월남엔 물자와 장비를 지원해서 단단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이제 월남과 월맹은 평화적으로 대치하게 됐습니다” 남 베트남의 평화를 만들어냈다는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말에 박정희 대통령은 “잘 된 거라고 생각합니까? 이제 월남은 끝났소. 끝의 시작이오. 정전 협정을 했다고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가만히 있을 족속들이 아닙니다. 미군이 다 철수했으니 월맹이 본격적으로 침공을 시작할 겁니다. 월남군은 막지 못합니다. 남쪽은 이제 평화가 왔다고 민주주의 운운하면서 미국 원조나 기다리고 있겠지만, 월맹군은 이제 월남의 적화 통일이 눈앞에 보인다고 할 거요” 박정희 대통령의 판단은 정확했다. 2년 후인 75년 4월 30일 10시 14분 월남은 공산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박 대통령이 키신저 미 국무 장관에게 “월남은 끝났다”고 말한지 1년 반도 안 된 시점이었다. 이렇게 미국과 많은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자의 정체를 몰랐다. 1940년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과 공산주의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절정이었다. 소련군은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영웅적으로 싸웠다. 특히 1943년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결전에서 독일군을 섬멸한 것은 전세를 역전시킨 쾌거로서 세계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소련은 미국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킨 전승국이었다. 이에 미국의 국무부, 재무부의 공직자 중에는, 계급이 없고 불평등이 없는 공산주의 사상, 공산주의 선전과 영웅적인 투쟁에 매료되어 자발적으로 소련의 간첩이 된 고위 관료들이 많았다. 이런 세계적인 공산주의에 대한 우호적인 상황 속에서, 이승만은 1945. 12.19일 19시 30분 정동 교회에서 공산주의자와의 정면 대결을 선언했다. KBS 방송국을 통하여 중계된 이승만의 연설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은 한반도의 공산 적화 세력을 향한 선전 포고였다. ‘공산주의자들은 국가의 반역자요 세상을 파괴하는 자’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소련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반역자, 파괴자, 공산 세력은 자유 국가 건설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이 연설은 대한민국 건국 지도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제2차 세계 대전 후 공산당에 대한 세계 최초의 정면 대결 선언서였다. 미국이 1947년 3월 소련에 대한 대결 노선을 선언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트루먼 독트린’보다 2년 앞섰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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