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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망 위기에 보여 준 이승만의 인격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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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위기에 보여 준 이승만의 인격 얼마 전에 일부 매체에서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6.25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에게 망명 정부를 요청하였다’라고, 실제로 없었던 사실을 부각하는 보도가 있었다. 그럴 듯하게 들려서 그런 식으로 역사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란 1950. 8. 4. 새벽 1시를 기해 낙동강 일대에서 전개한 방어 전투를 말한다. 1950. 7. 13일에 대구 사령부로 부임한 미 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낙동강 마지막 방어선을 만들어 놓고 다음과 같이 3가지의 말을 남겼다. 첫째, “Stand or Die”(지켜라, 안 그러면 죽어라). UN군 작전 제1호 명령이었다. 둘째,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셋째,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 붕괴 위기가 여러 차례 나타나자 미국의 무초 대사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부를 옮길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권총을 꺼내 들고 아래위로 흔들면서 말했다. “이 총으로 공산당이 내 앞까지 왔을 때 내 아내를 쏘고, 적을 죽이고 나머지 한 알로 나를 쏠 것이오. 우리는 정부를 한반도 밖으로 옮길 생각이 없소. 모두 총궐기하여 싸울 것이오. 결코 도망가지 않겠소.” 75세 이승만 대통령의 기세에 무초 대사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갔다. 낙동강 전선 붕괴라는 최악의 위기 순간을 극적인 승리로 전환시킨 전투가 영천 전투다. 낙동강 전선 다부동을 못 뚫은 인민군 15사단이 9월 6일 영천 시내를 점령하고 경주로 진격해 왔다. 전선 붕괴 직전까지 이르자 워커 장군은 “영천을 탈환하지 못한다면 국군 2-3개 사단 및 10만 명의 요인을 괌이나 하와이로 철수하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영천이 무너져 공산군이 여기 부산에 오면 내가 먼저 앞에 나서서 싸울 것이오. 미군들이 가고 싶다면 자기들끼리만 떠나라고 하시오!”라고 하면서,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목사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한국 교회는 하나가 되어 부산 구덕 운동장에 모든 선교사들, 목사들, 장로들,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했다. 많은 목사들이 부산 항성 교회에 모여서 금식 기도를 했고, 초량 교회와 광복 교회에서도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마침내 9월 10일 국군은 총반격을 개시하여, 9월 12일 극적인 승리로 주 저항선을 회복하였다. 이 영천 전투의 승리가 1/5000의 확률이라는 인천 상륙 잔전을 감행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6.25 전쟁 곳곳을 들여다보면 진퇴양난의 순간에 이승만이라는 인격이 얼마나 독특한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 많이 있다. 그는 전쟁의 위기를 국가와 민족의 발전으로 이끌어 간 것이다. 북한과 소련 군사 고문단의 예상을 뛰어넘는 항전 의지, 그 이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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