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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익 모두가 인정한 지도자 이승만 (2)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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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익 모두가 인정한 지도자 이승만 (2) 1904.8.7.까지 5년 7개월간 이승만은 사형수로서 한성 감옥에서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전도에 힘을 다하였다. 이승만의 전도로 감옥에서 40여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이승만은 한국 최초의 전도 왕이다. 그 당시 한반도에 와 있던 어느 선교사도 그만큼의 한국인들을 개종시킨 사례가 없었다. 중요한 점은 이승만의 “한성감옥 동료”가 ‘한성’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전도한 그 40여 명이 개혁파 지식인이며 훗날의 독립 운동가, 대한민국 건국 세력이 되었다. 이승만의 한성 감옥 동료들을 “복당 동지(福堂同志)”라고 불렀다. 감옥에서 이승만과 예배를 드릴 때 죄수 이원긍의 아들 이능화(李能和)는 감격적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지옥과 같은 감옥이 천당으로 변했다.” 그들은 감옥을 복당(福堂)이라고 불렀다. 한성 감옥의 복당 동지들 중에는 신흥우와 이상재가 있었다. 국민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던 기독교 교육자 이상재가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을 추대하는 데 앞장섰다. 이상재 역시 이승만의 전도를 받아서 기독교인이 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한성, 러시아의 노령, 중국의 상해의 임시 정부는 결국 하나로 합쳐져서 ‘통합 상해 임시 정부’가 되었다. 1919년 9월 상해 임정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세워져, 임시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선출했다. 이로써 이승만은 우리 민족과 정부의 대표자로 등장하게 된다. 임시 정부 대통령 이승만의 첫 업무에 대해서 교수이자 정치 고문 올리버는 이렇게 말한다. “이승만은 대한 공화국 대통령 명의로 열강의 정부 수반들에게 외교 관계 개설을 제안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 셈이다. 자금력도, 강력한 지지자도 없는 소규모 망명 단체가 그토록 많은 것을 이룩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 후 해방된 1945년 8월, 일본의 계교에 의해 좌파 여운형이 만든 '건국 준비위원회'의 주석으로 이승만을 추대하였고, 그해 10월에 공산 좌익 박헌영 역시 초대 인민 공화국 주석에 이승만을 일방적으로 추대하였다. 평생을 독립 운동가로서 활동한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지도자로서, 좌우익 모두에게 인정받았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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