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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의 대 일본 선전 포고 - (1)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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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李承晩)의 대 일본 선전 포고 - (1) 해방 후부터 공산주의자들은 이승만의 항일 운동을 철저히 감춰 왔고 왜곡했다. 그들이 감추며 왜곡하는 이유를 이승만의 독립 외교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승만의 항일 외교 운동은 자유 대한 민국 건국의 맥락과 함께 바라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기 전인 1939년 11월쯤부터 이승만은 집필에 몰두한 끝에 1941년 여름, 뉴욕에서「Japan Inside out」을 출간하였다. 이승만은 이 책에서 “일본이 미국에 도전할 것이고, 그러면 미일(美日) 전쟁이 불가피하다"라는 주장을 전개했다. 실제 1941년 12월 7일 태평양 전쟁 발발 3년 전부터 이승만은 일본의 미국 침공을 예견하였다. 사실, 「Japan Inside out」출간 당시 미국에서는 오히려 혹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승만의 경고대로 미일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서는 연일 그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이슈가 되면서 그 책은 이승만과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진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때까지 이승만은 미국 국무부에서 “독립에 미친 늙은이”로 알려져 있었다. 책이 출간되고 전쟁이 터지면서 이승만은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미국 국방부에서는 이승만을 호의적으로 보게 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즉각 이승만과 협조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그 첫 열매가 한국인들의 OSS 참여였다.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는 대외 첩보 공작으로, 지금의 CIA로 발전한 조직이다. OSS의 주요 임무는 포로의 심문과 적의 문서 번역, 적의 방송 및 무전 청취 등을 통한 정보 수집, 적의 점령 지역이나 후방에서 현지 주민들을 중심으로 유격대를 조직해서 적의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1942년 1월 24일, OSS 공작을 위한 한국인 고용 계획이 승인되었다. 평소 이승만과 친분이 있던 OSS 책임자 프레스턴 굿펠로(Preston Goodfellow) 대령은 구미 위원부의 추천을 받아 일본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한국 청년들을 훈련시켰다. 이때 OSS 대원이 된 청년들 중에는 장기영, 이순용, 정운수, 김우전, 유일한, 김길준 등 장차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이승만은 흔히 외교 독립론자로서 무장 투쟁을 싫어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이승만은 일본군과 싸울 한인 전투 부대를 창설하려고 노력했다. 무장 투쟁이 중경의 임시 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받을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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