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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지 않고 변화되어 승천한 에녹 | 운영자 | 2020-0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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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고 변화되어 승천한 에녹
(창 5:21-24) 21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Enoch)은 우리가 많이 공부한 것처럼 죽지 않고 살아 변화되어 하늘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생들은 다 죽어야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27에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런데 이런 말씀에도 불구하고 에녹은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되어 하늘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에녹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본래가 죽음이 아니라 영생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녹이 죽지 않았다는 것은 몇 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히브리서 11:5을 보면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 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 니라 또한 창세기 5:24을 보면 에녹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아담부터 시작해서 노아까지 族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믿음의 족장들의 종말을 보면 다 마지막에는 몇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5:5을 보면 ‘아담이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또한 5:8, 11, 14, 17, 20, 27, 31을 보면 다 ‘죽었더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에녹만큼은 창세기 5:23을 보니까 ‘에녹이 365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라고 기록돼 있지 않죠. ‘에녹이 365세를 향수 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5:23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죽었더라는 표현이 없어요. 이것은 에녹이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되어 승천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변화를 소망한다면 에녹의 삶을 배워야 되고 또 에녹과 같은 삶을 살고자 몸부림쳐야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녹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몇 가지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녹은 철저한 회개(悔改)를 통해 죄를 이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창세기 5:21-22을 보면 에녹이 65세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65세부터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그의 삶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한 삶이었고, 65세 이후부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바뀌었던 것이죠. 65세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에녹의 삶이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식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부르게 하신 것이죠. 므두셀라는 히브리어로 ‘메투셀라흐(jl'v,Wtm]) ’입니다. ‘무트’는 ‘종말, 끝’이라는 뜻이고 ‘샬라흐’는 ‘보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므두셀라의 뜻은 ‘종말을 보낸다, 내가 세상을 끝낸다’는 뜻이에요. 그 당시 전해 내려오는 설화(說話)를 보면 각 마을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 국가,민족,개인 등을 지키고 보호해 주는 신)이 있었는데, 그 수호신의 이름이 므두셀라였습니다. 만약 그 수호신이 깨지거나 부서지거나 죽는다면 그 마을에 종말(終末)이 온다고 알려졌어요. 그런데 그 므두셀라로 아들 이름을 지으라는 거죠. 이것은 네 아들이 죽으면 세상 끝이 온다는 뜻이죠. 그래서 에녹은 아들을 볼 때 마다 ‘야, 이 아들이 죽으면 세상 끝이 온다니. 곧 세상 종말이 오는 구나!’ 늘 아들을 보면서 세상 종말을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65세까지 에녹의 삶이 비 종말적(非 終末的)인 삶이었다면, 65세 이후부터 에녹의 삶은 종말적(終末的)인 삶이었습니다. 늘 종말을 생각하고 종말에 맞추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에녹은 철저한 회개의 삶을 산 것입니다. 에녹이 65세에 갑자기 하나님과 동행하고 바뀌었다는 것은 바로 64세에 그의 삶이 회개하였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철저한 회개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철저한 회개가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회개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느냐? 1) 첫째로 회개하면 돌이키게 됩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요,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삽니다. 바뀌지 않아요. 어제까지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다면 오늘도 동행하지 못하고 내일도 동행하지 못하는 거죠. 바뀌지 않아요. 그러나 진짜 회개하는 사람은 돌이키는 거예요. 죄악 된 삶을 청산하는 거죠. 이제는 죄악 된 삶을 바라보지 않는 겁니다. 사도행전 3:19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라’. 회개하고 돌이켜. 회개한다는 것은 돌이키는 거예요. 회개하는 것은 뒤로 돌아하는 거죠. 회개하는 것은 다시는 과거의 죄를 반복적으로 짓지 않는 것입니다. (행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 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 두 번째로 회개하면 죄에서 떠나게 됩니다. 죄에서 돌이키면 죄에서 떠나게 되는 거죠. 에스겔 18:30을 보면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너희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고 구속사(救贖史)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돌이켜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떠날 지어다’라고 죄에서 떠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떠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죠. (겔 18:3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 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3) 세 번째로 회개하면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회개한 사람은 반드시 회개의 열매가 맺어지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 달라지는 거죠. 에녹의 철저하고 회개한 열매, 그 열매가 바로 하나님과의 동행(同行)이에요. 바로 그 열매의 최종적인 열매는 바로 변화인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되는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3:8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또 사도행전 26:20을 보면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고 그랬어요. 누가복음 13:3이나 13:5보면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셨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망하고 죽게 돼있는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켜 죄에서 떠나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행 26: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 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눅 13: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에녹은 죽지 않았습니다. 에녹은 변화되어 하늘나라로 승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에녹이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죄를 돌이켜 떠나서 죄와 상관없는 믿음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에녹이 65세에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죄에서 떠났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도 오늘 이 시간부터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죄에서 떠나는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역사만 일어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철저한 회개의 삶은 죄를 이기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에녹은 죄를 이겼습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죠. 죄를 지으면 죽게 돼있어요. 아담이 전 인류의 대표자인데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하므로 그 죄가 세상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겁니다. 로마서 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느니라’ 만약 에녹도 죄를 이기지 않았다면 에녹도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에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이긴 거예요. 그래서 에녹이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되어 승천(昇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동신 성도들도 날마다 죄를 이기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사단 마귀는 악한 영을 동원해서 우리를 교묘하게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죄를 이길 수 있느냐? 1) 첫째로 믿음으로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죄를 이기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믿음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결국은 죄를 짓고 눈물짓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때 그것이 죄라는 걸 모르고 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죄라는 거 알면서도 안 되는 거예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그랬는데, 시험에 드는 거예요. 거기에 빨려 들어가는 거죠. 요한일서 5:4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것은 곧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강한 믿음이 있다면 아무리 세상의 유혹이 파도처럼 우리에게 밀려온다 할지라도 그 파도를 이기는 우리가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2) 두 번째 말씀으로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7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열심히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속에 믿음이 강해지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주일 대 예배(2부 예배)에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듣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강한 믿음이 형성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단 마귀가 유혹한다 할지라도 그 유혹을 넉넉히 물리칠 수가 있는 거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믿음이 강해져요. 그러나 말씀을 멀리하는 사람은 점점 믿음이 약해지는 것이죠. 요한일서 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 5:4이나 요일 3:9의 공통점이 뭡니까? 하나님께서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는 거예요.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내가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가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삶을 산다면 바로 그 분은 세상을 이긴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며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다는 거죠. 이 하나님의 씨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8:11에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라고 기록하고 있잖아요. 이 씨앗은 살아 있는 생명력이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사단 마귀가 유혹한다 할지라도 살아 역사하는 그 생명, 예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그 유혹을 삼키고 물리칠 수가 있는 거죠.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오늘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되지 않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나의 내일은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바로 이런 분은 점점 믿음의 발전이 있는 것입입니다. 애가 두 살, 세 살 기어 다닐 때가 있고, 또 걸어 다닐 때가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생, 또 성인이 돼서 시집 장가갈 때가 있잖아요. 자라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점점 자라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의 믿음이 어제보다는 오늘보다 더 나아야 되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야 된다는 거죠. 날마다 믿음의 발전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에녹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발전을 통해서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변화(變化)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믿음이 아니면 세상을 이길 수 없어요. 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거해야 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구속사의 말씀을 배워야 되고, 이 구속사 세미나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할 때 여러분이 죄악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속사의 말씀이 우리 속에 살아 생명력 있게 거할 때 바로 그 말씀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를, 죄를 이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오직 말씀만 붙잡고 달려왔다면 남은 생애 더욱 하나님 말씀만 붙잡고,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에 생명을 걸고, 이 구속사의 말씀을 전하는데 앞장서므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인생도 또 저의 인생도 에녹처럼 하나님처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 승천하는 역사가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에녹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 육신의 생각은 다 망(亡)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에녹이 육신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면 절대 하나님과 동행 못해요, 죽을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니까.? 그러나 에녹은 안 죽었거든요. 에녹은 살아서 승천해서 변화됐어요. 그것은 뭐냐? 에녹이 육신의 생각을 이기고 날마다 영의 생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5-6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망은 죽는 거예요 생명은 사는 것이고. 그러니까 육신의 생각을 가지면 죽을 수밖에 없죠. 그러나 영의 생각을 가지면 산다는 거예요. 생명 그리고 평안이라는 거예요. 모든 게 잘 된다는 거예요. 영(靈)의 생각, 곧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죠. 왜? 요한복음 4:24에 ‘하나님은 영’이시잖아요. 영의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생각을 갖는다는 거죠. 빌립보서 2:5에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와야 되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와 있을 때 바로 영의 생각을 갖는 겁니다. (롬 8:5-6)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 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오늘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되겠죠.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렇게 같이 신앙 생활 하는 성도님들은 다 믿음의 공동체(共同體), 말씀의 공동체에요. 우리는 서로 적(敵)이 아니에요. 공동체다 이말이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兄弟)자매(姉妹)에요. 쉽게 말하면 우리는 가족이에요. 그러면 허물을 덮어주려고 하고 감싸주려고 하는 게 가족이죠. 가족이 까발리는 거 봤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니까 우리는 가족이지 우리가 원수고, 우리가 적입니까? 우리가 싸워야할 적은 누구냐? 바로 이단(異端) 삼단하면서 구속사의 말씀이 전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그 어둠의 세력들이 우리의 적이에요. 그들과 싸워야지 왜 우리들(형제 자매)까지 티격태격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만약에 누군가가 예수님을 비난해요. 만약에 누군가가 예수님을 음해(陰害)해요. 예수님에 대해서 온갖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예수님을 모략하죠. 그런데 그걸 들을 때 내 가슴이 너무 아파. 내 가슴이 미어져. 만약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면 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예수님을 모략하고 음해하고 비난해도 내 마음이 아프지 않아요. 나랑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과연 그분 속에 예수님 마음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누군가가 우리 동신 교회를 비난하고 서울의 원로 목사님을 비난하고 음해합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가슴이 아프고, ‘야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지’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분은 진짜 우리 동신 교회 교인이죠.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고, 가슴이 아프지도 않고, 그냥 흘러지나 가는 이야기밖에 안돼요. 그렇다면 과연 내가 동신 교회 교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정말 내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있다면 예수님이 비난당할 때 아플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내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비난당해도 아프지 않는 거예요. 에녹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늘 하나님이 아파하실 때 같이 아파하고 하나님이 기쁘실 때 같이 기뻐하면서 하나님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에녹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의 생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1) 성경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디모데 후서 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그 말씀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의 성령으로 성경이 기록돼 있다는 거죠. 그러므로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영이에요.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런데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성경과 상관없이 사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성경 말씀을 붙잡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구속사 시리즈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경륜(經綸)이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구속사 시리즈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내 생명처럼 소중히 붙잡고 나갈 때 그분은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태국과 미얀마 구속사 세미나 지난 번에 이 승현 목사님이 태국과 미얀마 세미나를 갔다 오면서 느낀 게 그 세미나에 참석한 목사님들의 공통적인 고백이 이거였어요. 목사님 이 구속사 세미나를 참석하고 나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거예요. 그 전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뭔지 몰랐다는 거예요. 그런데 구속사 시리즈를 읽고 구속사 세미나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다보니까 아 하나님의 마음이 이거군요, 하나님이 우리 에게 원하시는 것이 이거군요, 그걸 알겠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고 변화되시기를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 구속사의 말씀을 붙잡는 삶을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음으로 읽으세요. 이 구속사 시리즈의 말씀을 믿음으로 읽으세요. 바로 그런 분은 자기도 모르게 점점 하나님의 마음을 바꿔지는 거죠. 요한복음 8:51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 니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진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안 죽는 대요. 그런데 에녹이 안죽었잖아요. 그것은 에녹은 진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았다는 거예요. 늘 말씀만 붙잡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영을 품고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변화가 됐다는 거예요. 2) 우리는 재림(再臨)을 사모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해야 되는 거죠. 어떤 귀한 손님이 우리 집에 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손님이 온 다음부터는요, 이분을 어떻게 모셔야 되고 어떻게 대접해야하는지 온통 손님에게 생각이 맞춰져 있는 거예요. 하다 못해 원로 목사님이 우리 집에 심방 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원로 목사님 심방하시는 동안만큼은 완전히 원로 목사님 어떻게 모셔야 되지? 뭘 갔다드려야지? 물은 찬물 갖다 드려야 되나 따뜻한 물 갖다드려야 되나? 온통 정신이 거기에 쏠릴 거 아니에요. 내가 진심으로 주의 재림을 사모하고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셔 보세요. 온통 생각이 예수님 생각밖에 없어요. 내가 진짜 새 예루살렘 성, 새 집, 새 하늘, 새 땅, 천국을 소망가운데 바라보면서 그걸 마음에 모시고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온통 그 생각 밖에 없어요. 다른 생각이 안 들어와요. 그래서 영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거죠. 성도 여러분, 영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만이 변화되고 승천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영의 생각을 가지려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한 순간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이말이죠. 유다서 1:14에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수많은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임하셨다’는 게 헬라어로 ‘엘 덴’인데 과거형입니다. 이미 에녹 마음속에 예수님이 오셨대요, 오셨대요. 에녹은 늘 재림하시는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에녹이 변화될 때가 지금부터 얼마인 줄 아세요? 계산해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을 때가 주전 3,427년경이에요. 그런데 지금이 2013년이니까 지금부터 약 5,440년 전에 에녹은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동행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오늘 세상 종말, 미말에 산다는 우리가 재림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후서 3:12에도 ‘하나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또 3:13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육신의 생각을 다 버리고 날마다 영의 생각으로 충만한 가운데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살아서 다 변화되는 주인공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에녹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證據,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삶이었어요, 증거가. 누가 무슨 말 하면 “야! 너 증거 있니? 증거 대봐” 그러잖아요. 아무리 말 잘하면 뭐합니까?, 증거가 없는데. 사람은 증거가 있어야 돼요, 증거가. 그런데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았는데 그 증거가 있는 삶이었다는 거예요. 히브리서 11:5을 보니까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증거를 받았대요.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 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 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이 헌금 많이 하잖아요. 명목이 많잖아요. 그럼 여러분, 그 헌금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받는 순간이에요. 하나님이 액수를 따지시는 게 아니에요. 액수가 뭐 중요합니까? 믿음이 중요하죠, 믿음이. 그래서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헌금을 드려도 믿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거예요. 금액이 적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적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이 없을 때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대요.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이 있는 거예요. 마태복음 6:21에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랬잖아요. 내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릴 수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기쁘시게 하는 자구나라는 증거를 주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헌금이 있는 거예요. 마태복음 6:24에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니까 아 이거 아까워가지고 하나님께 못 드린다면 결국 그 사람은 그 돈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거죠.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 라 요한계시록 21:21 보면,‘새 예루살렘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 예루살렘 성은 길바닥이 다 정금(精金)이에요. 정금. 가장 순수한 금이에요. 그러니 이 땅의 수천 만 톤의 금이 있어봤자 그거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이 땅에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정말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헌신하며 바친 그 물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반드시 큰 상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립니다. (계 21: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 금이더라 에녹은 이런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모든 걸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늘 그것이 에녹의 관심거리였어요. 에녹은 모든 삶의 초점이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맞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어떻게 하면 내가 남은 생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것인가’ 이것만을 생각하면서, 바로 그것이 영의 생각이죠, 영의 생각을 가지고 오직 말씀만 붙잡고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우리도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될 줄 믿습니다. 고전 15:51-53을 보니까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변화된다’ 그랬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변화된대요. 그래서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다는 거예요. (고전 15:51-53)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 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 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여러분 보세요,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이에요. 가나안은 천국의 그림자잖아요.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 땅 들어가는데 요단강이 마지막 장애물 아니에요. 오늘 우리의 썩을 몸 가지고는 가나안,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딱 딛고 서있는데, 요단강물이 쫘악 갈라져서 마른 땅이 됐어요. 아담 읍 변방에서 물이 언덕을 이뤄가지고 넘쳤잖아요.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부터 25km 위입니다(수 3:14-17). 하나님께서 거기서부터 물을 멈추게 하신 거예요. 대단한 역사입니다, 법궤가 들어가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큰 장애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꼼짝 못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사단 마귀가 우리가 천국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할지라도 마지막 나팔에 다 변화되는 거예요.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고 이 썩을 것이 아니함을 입고 바뀌는 거예요. 오늘도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나팔에 변화되는 걸 소망하면서 누가 뭐라 그래도 우리는 구속사 시리즈의 말씀만 붙잡고 이 말씀만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에녹이 증거 했어요, 에녹이. 유다서 1:14에 ‘에녹이 사람들에 대하여 증거 하여 가로되’. 에녹은 구속사의 말씀을 전했어요. 에녹은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종말의 말씀을 전했잖아요. 그게 바로 계시록 14:6의 영원한 복음이고, 계시록 10장에 나오는 작은 책의 말씀, 바로 새 노래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말씀입니다. 에녹도 구속사의 말씀을 전한 거예요. (유 1:14)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도 남은 생애 이 구속사의 말씀 변화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서 남은 생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다가 죽지 않고 살아서 다 변화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희들 주일 대 예배를 통해서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집을 소망가운데 바라보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도 에녹처럼 날마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하나님 나라 천국을 사모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 지금까지 육신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았던 모든 삶을 철저히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시고, 이제 이 순간부터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에녹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것인가 초점을 맞추며 살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도 어떻게 하면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초점을 맞추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정말 주님의 사업에 많이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물질이 부족하고 또한 돈이 없고 어려운 가정도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시간에 하늘의 문을 여시사 천천만만 가득가득 채워주시고 절대로 물질적으로 궁핍하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영육 간에 부유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우환 질고 병마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믿음으로 기도할 때 모든 어둠을 몰아내 주시옵소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옵소서. 모든 안 되던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 원로 목사님 이렇게 몸이 불편하신 가운데 치료받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말씀의 치료하는 광선을 보내 주시사 모든 병이 완전히 깨끗이 나음을 입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독수리 같은 새 청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구속사의 말씀을 완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모든 것 감사드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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