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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녹의 승천 비결과 구속 경륜 | 운영자 | 2020-0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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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승천 비결과 구속 경륜 창 5:21-24, 히 11:5-6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아담의 7세 손 에녹(Enoch)은 아담 이후 622년에 출생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365세(아담 이후 987년)에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變化) 승천(昇天)하였습니다(창 5:21-24, 히 11:5-6).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영생(永生) 불사(不死)함으로 경건한 삶의 극치를 보여 주었습니다. 에녹은 이 세상과는 다른 장소, 하나님의 나라로 죽지 않고 살아서 옮겨진 것입니다. 죽음을 뛰어넘는 신비(神秘)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최대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이는 에녹이 아담과 308년을 같이 지내면서 아담이 전수(傳受; 기술이나 지식 따위를 전하여 받음)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창 5:21-24).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昇天, 옮기운)한 비결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창 5:24)을 살았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히 11:5)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에녹의 승천 비결과 구속 경륜”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창 5:24).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비결 첫째는, 하나님과 동행(同行)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창 5:24). 암 3:3 (바른 성경) 두 사람의 뜻이 맞지 않는데 어찌 동행하겠느냐? 그러므로 두 사람이 길을 같이 간다면 미리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동행(同行)’이란 만남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남의 반복은 역행(逆行)이나 별행(別行)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만남이 없으면 동행도 없습니다. 따라서 동행은 한 번의 만남으로 끝까지 함께하는 것입니다. 동행하는 사람끼리는 숨소리만 듣고도 가슴 깊은 곳의 심정을 서로 교감합니다. 교감된 심정은 서로의 가슴에서 항상 같은 파장으로 공명됩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호쾌(豪快)하게 웃을 때 함께 웃습니다. 그러나 동행하는 사람은 웃음을 잉태한 아픔의 크기를 알기 때문에 눈물을 감춘 채 웃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고독으로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합니다. 그러나 동행하는 사람은 그 고독의 무게를 알기 때문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대표적인 사람이 에녹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에녹의 행적은 너무나 간단합니다(창 5:21-24, 히 11:5-6, 유 1:14-15).
1) 동행의 조건 에녹이 죽지 않고 승천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창 5:24)인데, 그 동행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목적지(目的地)’가 같아야 합니다. 목적지가 다른 두 사람이 동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목적지로 삼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대로 살지 못하면 그 삶은 실패한 것이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삶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삶은 성공한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목적지를 나의 목적지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고전 10:31). 둘째, ‘방법(方法)’이 같아야 합니다. 목적지가 같다 하여도 가는 방법이 다르면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사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 라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가데스에서 반석을 두 번 쳐 물을 냈을 때 백성들은 환호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선언하시고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민 20:8-1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방법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원하시는 방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마음’이 같아야 합니다. 롬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 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을 품고 살았기에 동행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같은 목적지를 향해 동일한 방법으로 함께 간다 하여도 서로 다투어 갈등이 있거나,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이는 동행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따라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속도(速度)’가 같아야 합니다. 같이 가는 사람의 속도가 다르면 그들은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서두르시면 우리도 서두르고 조급히 가고 싶더라도 하나님께서 멈추시면 함께 멈출 때 동행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조급한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잠 14:29, 21:5, 딤후 3:4).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여정에서 구름이 떠오르면 진행하고, 구름이 머무르면 곧 멈추어 진을 쳤습니다(민 9:17). 우리 성도들의 삶도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어 동행하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에녹의 삶이 바로 이러한 삶이었습니다. 그가 65세에 회개하지 않았다면, 이 네 가지가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는 하나님과 목적과 방법, 마음과 속도가 모두 일치하는 동행의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2) 동행의 의미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창 5:22) 창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인 복종으로 경건한 생활을 했다는 뜻입니다. 즉 그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결국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였다는 말입니다(히 11:5). 또한 이 말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걸어 다니다, 산책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그분의 형상 닮기를 노력했다는 말입니다(참조, 암 3:3). 성경에서 노아와(창 6;9) 미가에게도(미 6:8) 이런 표현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본받으며 거룩한 삶을 영위했던 에녹의 사건은 비록 사단의 권세가 이 땅을 어지럽게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 갈 수 있다는 소망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참조, 엡 5:1-14). 에녹이 신령한 몸으로 승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5:24에서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5:24의 ‘동행(同行)’을 뜻하는 히브리어 ‘이트할레크’는 ‘걷다’라는 히브리어 동사(할라크)의 재귀 동사로서, “자기 자신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예속시켜서 뒤를 따라간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품고, 300년간 일편 단심 변함없이 걸었습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계속해서 하나님만 따라 걸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으며, 죽지 않고 살아 승천(昇天)의 영광을 누리게 한 것입니다(히 11:5). 우리 성도들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손을 잡고 늘 함께 하여 온전히 동행할 때 능히 죽음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3) 동행의 특징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날 때 혼자 살 수 있도록 지음받지 않았습니다. 고독(孤獨)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을 병들게 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配匹)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두지 아니하고 늘 동행해 주시며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어떠한 생활일까요? 첫째, 마태복음 7:21-23 말씀에 의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백성에게는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평강을 주십니다(시 29:11). 둘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하나님 앞에 서는 태도를 말합니다.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겸손한 마음, 또한 하나님 앞에 서서 ‘말씀만 하옵소서’ 하는 절대 순종의 태도, 하나님의 옆이나 뒤가 아니라 앞에 서서 살아가는 삶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셋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4:13 말씀과 같이 “우리가 그의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삶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좌우(左右)가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어려움이나 괴로운 일이 생길 때 사람을 찾고, 사람의 도움을 구하려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그러한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구할 때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로 문제 해결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모자람이 없이 늘 풍부한 삶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동자가 그러한 자들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아 범사에 모자람이 없는 풍요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대하 7:11-16).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생활)이란,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 앞에 서며,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동행의 결론’은 ‘거룩하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했습니다(레 11:45). 말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믿는 것, 행동하는 것, 결과 보고 “어, 네가 거룩하다” “내가 거룩하다는 말씀을 줬는데, 그대로 영접하고 그대로 살아 열매 맺었구나! 알았다 나와 같이 가자...”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도 거룩하지 않으면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치 않으면 동행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동행하지 못합니다(삼상 15:22, 23). 그러면 에녹의 동행을 오늘날 우리들의 삶(생활)의 현장과 생각하면서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① 300년이라는 긴 시간의 동행(창 5;22) 에녹은 경건한 신앙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인류에게 경건한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에녹의 뜻이 ‘가르치다’입니다. 에녹은 인류에게 영생, 변화(승천)를 가르친 인류의 스승입니다. 에녹의 경건성은 오래 계속됐습니다(300년 동안). 창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300년은 주일로는 15,600주일이며, 달수로 3,600개월입니다. 일수로는 109,500일이며, 시간으로는 2,628,000시간입니다. 하루에 세끼식 328,500번을 먹었습니다. 시 104:23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 영육이 죽지 않고 에녹처럼 살아서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이루어지는 그 말씀 속에 이 변화가 분명히 이루어질 때가 있을 것인데, 오늘에 사는 믿음의 성도들이 반드시 끝까지 믿고 생존하므로 변화하는 은혜를 다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②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일상 생활 속의 동행(창 5:22) 에녹은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동행했습니다. 첫째, 에녹은 믿음으로 아버지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면서, 하나님께 ‘할렐루야, 아멘, 감사’하면서 동행한 것입니다. 둘째, 에녹은 결혼한 상태에서 가장 엄격한 성결의 과정이 일치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에녹 아버지가 전도할 때에, 아들인 므두셀라가 아버지의 가방을 가지고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셋째, 에녹은 일상 생활과 함께 동행했습니다. 동행은 함께 가는 것은 물론이며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분의 뜻을 따라 철저히 한 걸음씩 옮겨 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동행은 몸만 다를 뿐 한 사람이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넷째, 에녹은 오늘날 우리들(교수, 교역자, 신학생, 평신도)처럼 가정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면서 동행했습니다. 에녹의 집은 하나님의 집, 작은 천국으로써의 에녹의 집이었습니다. 에녹은 가정생활에 일등이고, 부부 사이도 일등이며, 자녀 교육도 일등입니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를 낳았다’ 할 때에, 에녹은 ⒜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 하나님 품 안에서 ⒞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그 울타리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③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동행(히 11:5-6) 에녹의 동행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동행이었습니다. 에녹의 발자국을 볼 때, 에녹의 발자국은 ⒜ 매일 매일 은혜의 발자국이었며 ⒝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발자국이었고 ⒞ 순종의 결과 열매 맺는 발자국이었으며 ⒟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후회가 없는 발자국이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의 동행의 삶은, 하나님의 손이 머리 위에 얹어 있는 나날들이었습니다(참고, 눅 1:66, 시 80:17). 하루도 에녹은 말씀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출발했습니다. 말씀으로 진행했습니다. 말씀으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말씀의 마침이 있었습니다. 에녹의 하루의 생활은 축복 받는, 축도의 생활이었습니다. ‘일생의 축도’를 받는 복된 생애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은 지금부터 약 5,441년 전에 승천(변화)하였습니다. *이것을 계산해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을 때가 주전 3,427년경이다. 그런데 지금이 2014이니까 지금부터 약 5,441년 전에 에녹은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동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세상 종말, 미말에 산다는 우리가 재림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겠는가? 베드로후서 3:12에도 ‘하나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또 3:13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비결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히 11:5).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 니라” 예수님께서도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6)고, ‘믿음’이 부활ㆍ승천과 직결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혼도 믿음으로, 부부 생활도 믿음으로, 말씀 받는 것도 믿음으로,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에는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내 생각은 망합니다. 믿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뿐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된 믿음의 선진들의 행적에는 한결같이 앞에 ‘믿음으로’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믿음만 있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14번이나 기록돼 있습니다. 또한 ‘믿음’이 있어야 에녹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을 수 있습니다(히 11:5-6). 권력과 돈, 명예, 지식, 재주 등 세상 어떤 것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지만,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정직과 성실, 충성을 겸하여 믿는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욥 22:2-3).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힘이므로(느 8:10),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자는 마음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집니다(시 37:4). 우리 손에 아무 것도 없는 바로 그 때가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게 되고 그분만이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심을 알게 됩니다(욥 22:26. 표준 새번역). 그래서 성경은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 58:1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3:1, 4:4)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에녹의 시대는 인류가 매우 부패(腐敗, 정신, 정치, 사상, 의식 등이 타락함)한 때였습니다(유 1:14이하). 그러므로 그런 시대에 있어서는 신앙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사람마다 대중이 가는대로 가 버리며 그 부패에 그냥 감염(感染)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도 사람이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기본(基本)을 이룸입니다(빌 1:21).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지 못하는 자가 영원한 내세(來世)에 들어가지 못할 사실은 명백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비결은 “믿음”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음으로 인하여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워”지게 되었습니다(히 11:5-6). 족장들의 족보를 나열할 때, “지내며......나았으며......죽었더라”라는 형식적 단조로운 반복(창 5장)이 있은 뒤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는 기록은 영광스러운 구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녹은 어떤 믿음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에녹은 행실이 어떠한 자였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에녹에 대한 이같은 묘사는 저자가 70인역을 따른 것이며 히브리 원문에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창 5:24). 사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가장 바람직하게 섬기는 삶의 기본이며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에 의해 약속된 상(償)이 비록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케 해주는 증거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나에게 하나님이 존재케 하는 것이며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천국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결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참조, 고전 12:9).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바늘 끝이 놓일래야 놓일 틈이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 하 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본문 히브리서 11:5-6 말씀은, 끝까지 믿고 생존하는 은혜를 받은 한 사람, 변화를 받은 에녹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시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가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이 없이는 절대 변화 승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고 믿음이 있어야 변화 영생 합니다. 베드로전서 1:9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0:39에도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분명히 믿음이 있는 자에게 역사 한다’라고, ‘성경의 모든 오묘한 비밀은 오직 믿는 자에게만 뚜껑이 열리게 돼 있다’라고 데살로니가 전서 2:13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보통 사람과 다르게 믿음이 있는데, 그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6에서 ‘기쁘시게 하다’는 헬라어로 ‘유아레스테오(eujarestevw)’입니다. ‘유’와 ‘아레스테오’의 합성어로. 그 뜻은 ‘완전히 기쁘시게 하다. 매우 기쁘시게 하다’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께 어떻게 했길래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는 그 증거까지 받은 사람이 됐을까요? 로마서 10:17 에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47 에는 ‘하나님께서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이 믿음이 생긴 것인데, 그렇다면 에녹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었을까가 궁금합니다? 그런데 박윤식 원로 목사님은, 그의 저서 “구속사 시리즈 제 1권 ‘창세기 족보’”에서, 이 사실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길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이런 믿음이 있는 자라는 칭호를 받아서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승천)했습니까? 아담의 아들 셋 계열의 인물들이 창세기 5장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930세에 죽었습니다. 창세기 5:5에. 930세에 죽기 전에 10대손이 노아인데 노아의 아버지 라멕까지 보고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56년 동안 9대손 라멕과 생존한 사실을 족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그 수많은 자손들과 그들의 형제들과 그들의 친척들에게 계속해서 에덴 동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생(변화)하는 세계에 대해서 분명히 계속해서 증거를 해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100% 믿음으로 받은 자가 바로 에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구약 성경에는 어떻게 입증하고 있느냐 하면? 아주 특이한 기록이 있습니다. 10대 족장들 중에 다른 족장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몇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 몇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창 5:4, 7, 10, 13, 16, 19, 26, 30). 그러나 단 한 사람 에녹만큼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라고 창세기 5:22, 24에서 하나님과 동행을 두 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창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면 에녹은 하나님과 몇 년 동안 동행했을까요? 성경은 분명히 그 숫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5:21-22에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3절에 는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므두셀라를 65세에 낳고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이 사실에서 분명히 에녹은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계산 ; 365 - 65 = 300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분명히 므두셀라라는 인물 속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또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로 볼 때 족보는 이렇게 많은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생존하는 은혜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신앙) 생활을 에녹처럼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소결론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하나님과 동행(同行)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창 5:24).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히 11:5). 셋째, 에녹의 승천 비결은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3.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비결 세 번째는, 에녹은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뛰어 넘은 것입니다. 그런데 에녹은 삶 전체가 아니라 65세 이후의 300년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365년을 살았는데 65년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65세일 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요? 그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것이 그가 회개(悔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이 후에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변화 받은 것입니다. 에녹은 자신의 아들에게 ‘종말’(終末)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므두셀라 jl'v,Wtm] : 그가 죽을 때 심판, 창을 던지는 자, 그가 죽으면 세상 끝이 옴)을 붙였습니다. 그 이름의 부정적인 의미를 볼 때 에녹이 자의적으로 자식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가운데 종말에 대한 계시를 그 자손을 통해 나타내기 위해 그러한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똑바로 걷기 위해서는 자기 걸음을 바라보는 것보다 도착점을 바라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분명히 이 세상에 끝이 있고, 심판이 있고, 하나님 앞에서 상급을 받는 날이 있습니다. 우리는 썩어진 세상을 바라보기 보다는 이 세상의 끝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에녹은 항상 끝을 바라보는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에녹이 바라본 두 가지 끝은 무엇입니까? (1) 홍수 심판이라는 끝을 바라봤습니다.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의 이름을 통해 세상 끝이 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홍수 심판이 있었던 해는 노아가 600세이던 때로 므두셀라가 969세를 향수하고 죽던 해입니다.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가 죽자 세상의 종말이 온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재림(再臨)이라는 끝을 바라봤습니다. 또한 에녹은 홍수 심판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수만의 천군 천사와 함께 오시는 재림의 모습에 대해서 아담의 7대 손 에녹이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 1:14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 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에녹이 회개한 이후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하여 종말과 재림을 선포했다고 할 때 그 연대는 주전 3427년으로, 2014년으로부터 약 5441년 전입니다.이렇게 오래 전에 살았던 에녹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미리 보았습니다. 유다서의 기록은 ‘오실 것이다’라는 미래형 예언이 아닌 ‘임하셨나니(came)’로 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에녹은 주님이 믿음으로 이미 자기 마음에 임재하신 것을 보면서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항상 보고 계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창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는 요셉의 고백에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의 믿음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재림에 대한 소망과 부활 변화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늘 하나님을 모시고 살 때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변화 영생하는 믿음의 사람들(성도들)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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