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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의 분단 정책과 이승만의 대응 ②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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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분단 정책과 이승만의 대응 ② 공개된 소련 공산당의 기밀 문서들 가운데 1945년 9월 20일자 스탈린의 지령이 있다. 내용은 한마디로 북한에 친소(親蘇) 정권을 수립하라는 명령이다. 9월 20일이면 이승만이 귀국하기도 전이다. 미국과 소련이 38도선으로 일본군의 무장해제 업무를 분담하기로 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었다. 통일 신라 이후로 1,500년간 통일 국가를 유지해 온 우리 민족이 분단된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전보 한 장으로 분단을 결정해 버렸다. 그 비극적이면서 중요한 전보에는 남한에 진주한 미군과의 합의나 한반도의 통합 또는 통일 문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스탈린에게는 미군과 협의해서 남북한 통일 정부를 수립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훗날 벌어지는 미소 공동 회의 같은 것은 모두 “쑈”에 불과했다. 스탈린의 전보 내용은 지시를 받은 실무자의 보고서에서 또 한 번 확인된다. 9월 20일자 지령에 대한 응답으로 12월 25일에 슈킨 총사령관이 보고서를 보냈다. 당시 소련의 군 지휘 체계는 스탈린 대 원수, 안토노프 원수, 정치국장 겸 대장 슈킨 총사령관 순이었다. 소련 군부 서열 3위의 실력자가 보낸 보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탈린의 9월 20일자 지령문에 따라서 한반도의 이북 지역에서 ... 소련의 정치, 경 제, 군사, 사회적 이익을 ... 영구히 지킬 인물들로 구성된 정권을 구축하기까지 ... 이런 정권 수립을 위해서 토지 개혁, 중앙집권적 조직을 서둘러 구성해야 한다.” 스탈린이 세우라는 정권은 “소련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적 이익을 영구히” 지킬 수 있는 정권이었다. 다시 말해서 꼭두각시를 세우라는 것이다. 슈킨이 보고서를 보낸 시점은 12월 25일--바로 그때 모스크바에서는 미국, 영국, 소련의 외무장관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우리 민족에 대한 신탁통치를 결정한 ‘모스크바 3상 회의’였다. 여기에서 또 한 번 겉과 속이 다른 공산주의자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앞에서는 한반도에 자주 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한 과정을 논의하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꼭두각시 정권 수립의 지령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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