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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의 북한 점령과 38선 ②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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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건국의 길, 그 지난(至難)한 여정 소련의 북한 점령과 38선 ② (지난호(6/30)의 이야기 끝부분: 그전부터 제기되었던 항복하자는 주장이 거세졌다.) 그 무렵 소련은 일본을 공격할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최대한 참전 시간을 늦추는 것이 기본 전략이었다. 일본의 힘이 다 빠진 다음에 쳐들어가서 희생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본래 소련군은 8월 11일에 전쟁을 시작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종전(終戰)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판단에 8월 9일에 공격을 시작했다. 바로 그날, 나가사끼에 또 한 번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일본은 항복을 결정하고 미국에 통보했다. 일본이 항복을 통보한 그날에 곧바로 항복이 선포되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소련이 한반도에 도달하기 전에 전쟁이 끝나 버렸다면, 분단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항복을 통보하고 나서 항복이 선포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때 시간을 끈 문제가 천황제였다. 천황제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의견이 달랐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권위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다. 미국 내에서는 천황은 전쟁 범죄자이므로 사형(死刑)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지일파(知日派)들은 천황을 제거하면 일본을 점령한 뒤에 통치하기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천황 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협상에 시간이 걸렸다. 결국 미국의 정책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천황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천황제를 놓고 미국과 일본이 줄다리기 하던 시간은, 분단의 비극이 잉태된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소련은 만주로 쳐내려왔고 한반도 북부까지 진군(進軍)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미국이 한반도를 둘로 나누어 미국과 소련이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진행하자고 제의했다. 그 업무 분담선이 북위 38도선이었다. ...중략(中略)... 북한을 점령한 소련의 붉은 군대는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붉은 군대와 연합 군대들은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들을 구축하였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신조선 역사의 첫 페이지가 될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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