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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에서 쓴 기독교 입국론 ①,②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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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쓴 기독교 입국론 ① 이승만은 감옥에서 <제국신문>과 <신학월보> 등에 수많은 논설을 남겼다. 그 외에도 노트에 여러 가지 형태의 자유로운 “잡기”(雜記)를 썼다. 이것 역시 간수들의 특별한 호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대의 문사(文士)가 감옥에서 쓴 글에, 감옥 밖의 수많은 독자들이 매료되었다. 그 중에는 고종 황제의 아들을 낳은 엄비(嚴妃)도 있었다. 정치범으로 투옥되어 기독교인이 된 그에게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당연한 관심사였다. 이정식은 이승만의 옥중 논설이 보여 주는 주제를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의 논리”라고 표현했다.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 혹은 기독교 입국론(立國論)을 보여 주는 논설로, 1903년 9월 <신학월보>에 실린 “두 가지 편벽(偏僻)됨”을 들 수 있다. 이승만은 이 글에서 “인간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라는 복음적인 신앙관을 보여 준다.
감옥에서쓴 기독교 입국론 ② (지난호(7/16)의 이야기 끝부분: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 혹은 기독교 입국론(立國論)을 보여 주는 논설로, 1903년 9월 <신학월보>에 실린 “두 가지 편벽(偏僻)됨”을 들 수 있다. 이승만은 이 글에서 “인간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라는 복음적인 신앙관을 보여 준다.) “사람의 극히 어려운 지경은 곧 하나님이 감화시킬 기회라 하나니, 비교하건대 논고(: ‘논고랑’(:벼 포기를 줄 이어 심은 둑과 둑 사이에 골이 진 곳.)의 줄임말. 편집자 註)에 물이 마르고 뜨거워 고기가 살 수 없게 된 후에야 스스로 새 물길을 얻어 강과 바다를 찾아갈지라... 이 세상은 우리의 잠시 사는 논고물이라. 다소 태평 안락한 데 사는 사람들도 바다같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 생수를 찾기에 게으르지 않컨대, 하물며 이 물이 마르고 흙탕 되는 도탄(塗炭) 중에 들어 어찌 새 물줄기를 찾지 아니 하리오.“ 이승만은 당시의 조선 상황을 “물이 마르고 흙탕 되는 도탄”이라고 표현했다. 고통스러운 시대 상황에 대한 적절한 비유이다. 마른 흙탕물에 사는 물고기가 살기 위해선 자연히 새로운 물을 찾아가야 한다. 새 물줄기가 바로 기독교라고 이승만은 단언한다. “대한 사람의 새 물줄기는 예수 교회라. 이 교회가 날로 흥왕함은 더 말할 것 없으려니와 아직까지도 저 불쌍한 사람들을 다 기회를 주어 우리와 같이 생활 샘으로 나오지 못하게 함은 실로 다 우리 신(信)이 부족함이요 사랑이 부족함이라.” 혁명을 꿈꾸다가 감옥에 들어온 이승만은 새로운 혁명을 꿈꾼다. 그것은 예수교로 일어나는 혁명이다. 오백 년(간)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 예수교라는 새로운 물줄기를 끌어들이는 혁명의 꿈이 죄수 이승만의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정치는 항상 교회 본의로서 딸려나는 고로 교회에서 감화한 사람이 많이 생길수록 정치의 근본이 스스로 바로잡히나니, 이럼으로 교회로써 나라를 변혁(變革)하는 것이 제일 순편(順便)하고 순리 된 바로다. 이것을 생각지 않고 다만 정치만 고치고자 하면 정치를 바로잡을 만한 사람도 없으려니와 설령 우연히 바로잡는다 할지라도 썩은 백성 위에 맑은 정부가 어찌 일을 할 수 있으리오. 반드시 백성을 감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한 후에야 정부가 스스로 맑아질지니 이 어찌 교회가 정부의 근원이 아니리요.“(원영희·최정태 편집. pp.152-155.) 이승만의 목소리는 마치 목사의 설교처럼 들린다. 교회에서 신앙으로 세워진 사람으로 길러내야, 제대로 된 나라가 설 수 있다. 썩은 백성 위에 맑은 정부가 세워질 수는 없다. 따라서 나라가 새로워지려면 백성이 새로워져야 한다. 백성을 새롭게 함은 *교화(敎化)로써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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