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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 후무한 이승만의 학력 기록 운영자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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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 후무한 이승만의 학력 기록 

 

이승만(李承晩)이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하버드 석사 과정에 입학한 것이 19079월이다. 그는 1년 안에 석사 학위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끝냈지만, 하버드는 그 2년 뒤인 19102월에 가서야 석사 학위를 주었다. 그 이유가 뭘까.

 

<워싱턴 포스트> 신문은 이승만의 미국 초창기 시절부터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특히 190765일에 조지 워싱턴 대학 졸업식에서 이승만이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는 기사를 실을 정도였다. 19052월에 이승만은 30세의 나이로 조지 워싱턴 대학 콜럼비안 학부에 입학하였고, 등록금은 면제받았지만 생활비가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여러 도시의 YMCA와 교회를 돌면서 강연을 했다. 그의 강연 내용은 한국인의 풍습, 풍물과 그에 적응하는 외국 선교사들과 한국 독립이었다. 총 회수는 무려 170여 회에 달했다. 인기가 있어서 <워싱턴 포스트> 등 여러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미국인 대다수가 일본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이승만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 야욕을 이해시키기가 힘들었다. 미국인들이 보기에 동양의 작은 섬나라에 불과한 일본이 한반도를 비롯해 거대한 대륙을 가진 중국을 위협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19079월에 이승만이 하버드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주변의 미국인들 가운데는 그 대학이 너무 진보적이고 세속적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독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그의 하버드 석사 과정에서 논문 제출만 남겨 둔 시점에서 학업을 중단하게 되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19083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교포 장인환이 일본의 조선 침략을 찬양하고 다니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권총으로 암살했던 것이다. 스티븐스는 일본이 대한 제국의 재정 고문으로 임명한 친일적 인물로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친구였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모르는 미국인은 그 사건을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보았고, 그 때문에 한국인은 폭력적이고 테러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오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미국인들의 편견은 1909년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면서 더욱 더 굳어졌다.

 

그러한 편견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이승만이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승만의 강연과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스티븐스 암살 사건 이후 한국인들에 대한 인상이 나빠지자, 지도 교수는 그의 면담 요청마저 거절했다. 석사 학위 논문으로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관한 논문을 제출했지만, 지도 교수로부터 심사에 관해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때 한국에서 인연이 있던 선교사를 만났고, 그 선교사의 추천으로 1909년에 프린스턴 대학 박사 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 하버드에서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그의 논문 심사를 거쳐 19102월에 석사 학위를 주었다. 그리고 그해 614일에 국제법 박사로서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함으로써 5년 만에 학사-석사-박사를 마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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