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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부 이승만 (國父 李承晩) -이승만의 과오 | 운영자 | 2020-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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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 이승만 (國父 李承晩) -이승만의 과오
이승만 정권이 범한 과오의 둘째는 부패와 독재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의 신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독재정권을 이끌었다. 그의 독재와 부패정권은 그가 장기집권을 도모하면서 뒤따랐다. 그가 4년 임기에서 2선만으로 멈추고 1956년에 물러났더라면 국부(國父)로 높임 받는데에 의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승만 박사는 3선을 위한 개헌을 강행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본을 짓밟았다.
그는 장기집권을 위하여 경찰력을 동원하여 국회를 유린하였고 사사오입이라는 변법을 사용하여 3선 개헌을 강행하였다. 어떤 이유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폭거였다. 평생을 민주주의를 외쳐온 그가 어떻게 그렇게 비민주적인 불법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그렇게 무리한 결과로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정권의 몰락을 가져 오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3선에서 라이벌은 조봉암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 후보를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씌워 사형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법살인이었다. 조봉암 후보의 사형은 이명박 정권 때에 재심 판결을 통하여 무죄를 선언하였다.
3.15 부정선거에 대하여 국민적인 저항이 일어나 학생들이 항의 데모를 일으켰을 때에 경찰은 총격으로 진압하려 하였다. 많은 학생들이 죽고 다쳤다. 바로 4.19 유혈진압이다. 이승만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의 나이 85세였다. 이미 총명이 흐려져 판단력이 흔들린 나이였다. 자신의 부하들이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항의 데모를 유혈 진압하는 사정을 모른 체 있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이승만 대통령은 부상당한 학생들이 입원하여 있는 병원을 찾아간 자리에서 말했다.
"학생들이 왜 이렇게 됐어? 부정을 왜 해? 암! 부정을 보고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승만 대통령은 학생들이 더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로 신속한 하야를 결단하였다. 1960년 4월 26일이었다. 분명히 이승만은 부정선거를 지시하지도 않았고 발포를 명령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책임은 그에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무리한 장기집권에서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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