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신학6 | 운영자 | 2020-07-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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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율법의 유래 율법의 유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친히 기록하여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행동의 체계로서, 율법은 인간의 삶과 하나님의 의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약속으로 주셨다.( 출24:12;34:28-29.) 그러나 인간이 그 율법의 의무를 다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인간편에서 보면 수용 불가능하였다.( 롬3:10-12; 약2:10.) 율법은 인간에게 완전복종을 요구하였다.(갈 3:10) 허나 인간은 율법대로 살 수 없으므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롬8:3-14 10:2-4.)고 바울은 서신에 기록하였다.
B. 율법의 본성 모세가 전한 율법의 본성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친히 써주신 십계명이다. 다윗은 시편 19편 7-8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세가 전한 율법이 613이나 된다고 중세 랍비 Maimonides가 말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의 본성에 대하여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또한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하였다. (롬7:12 14.) 하지만 사람으로서는 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하였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죄한 자가 되나니"...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였다.( 약2:10; 갈3:10.)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믿었다.(히12:2)
C. 율법의 역사
회심 후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의 율법관은 180도 변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이 본 율법의 역사는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함(롬3:19)
이와 같이 율법의 역사는 예수가 오기까지 필요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율법 아래 매여있는 모든 자들을 율법에서 해방 자유케 하였다 했다.(갈3:21-23; 롬8:1-2; 히7:17-19 10:9-10,14.)
4. 바울의 인간론 바울의 인간론은 그의 사상의 일부분이며, 그의 기독론에 부속되는 것이다. 이유인즉 바울의 입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서 만이 인생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기독교 사상은 형이상학적 사변이나 철학적 논증이 아니라,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위에서 거기에 기초를 두고, 모든 일을 하면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 라고 하였다. 바울의 기독론은 다른 사도들과 같지 않다. 다른 사도들은 유대교적인 메시야로서의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바울의 것은 다메섹에서 본 그리스도를 중심하면서,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속에 정립되어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입증하기 위해 인간의 창조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A. 인간의 구조적 양면성 바울은 인간의 내적인 성질과 외적인 성질을 말함으로 일종의 인간론적 이원론을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면 "내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또는 "겉 사람은 부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하였으며 "그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하였다.( 롬7:22; 고후4:16; 엡3:16.) 이러한 바울의 사고 방식은 헬라주의적 사상의 영향을 받은 증거라고 혹자는 역설하고 있으나, 그러나 엄격히 히브리적 문맥 속에도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 2:7) 하였다. 바울은 이와같이 인간의 구조적 이분설을 인정하면서도 구조적 요소의 내적 본질에서 하나를 구성하는 인간의 인격의 근본적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다.(엡1:9-10, 4:4-6; 고전6:17, 15:44)
B. 인간의 육신과 영 바울은 인간의 육신에 관하여 말할 때 그는 단순히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의 견지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몸은 가장 고귀하고 위대하고 순결한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 그러한 일들을 위해서 지어졌다했다.( 롬1:19-20 (참고 창1:28) 그러나 인간의 몸은 경험적으로나 실제 생활에서나 죄로 인도하며 죄에 매인 생활을 하게 한다. 이러한 약한 것들은 그리스도 없는 인간의 성품에 타고난 것이며, 이렇게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얼마나 오류를 범하기 쉽고, 또 얼마나 죄스러운가를 말해준다. 유혹 앞에서 아무런 힘도 못 쓰고 넘어지고 마는 것이 그리스도 없는 인간의 성품이다. 유혹이 올 때 그 앞에서 무기력하게 넘어질 뿐 아니라 죄에게도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했다. 또한 바울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했다.( 롬8:12-13.) 그의 말대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은 육체대로 살 필요는 없다. 이제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우리는 옛 사람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새 사람에 대하여는 산 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육체를 따라 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며, 따라서 우리가 이제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고후5:13-16; 갈5:16-1724-25 (참고 벧전4:1-2).)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갈2:20; 빌1:20 21; 롬14:7-8.) 우리의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 지배를 받을 때는 죄의 재료였던 본능, 열정, 감정, 욕구들이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될 때는 선을 위한 재료들이 된다.( 롬8:28.) 바울은 이와같이 인간의 육적 부분과 영적 부분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구조적 두 측면이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 완성을 바라고 또한 믿었다. 그는 이 구조적 두 부분의 완전 연합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만이 가능함을 말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4 5 10-11.) 또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였으며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후5:17; 고전6:17.) 한다. 바울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여 생각하지 않았으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육과 영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 속에 창조되어 한 인격을 이루도록 되어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피조물인 것이다.( 엡1:3-6; 고전3:16 6:19 (참고 창1:27 28 2:7).) 그러므로 인간의 육과 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바쳐져야 한다.( 롬15:5-6; 고전6:20 10:31; 빌1:20.) 인간은 전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보다 완전히 체험하게 된다.( 롬8:20-25; 고전15:35-49; 살전5:19-24.) 이와같이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또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간다."고 한다. 바로 인간의 몸은 "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바 성령의 전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 하였다.( 엡2:21 22; 고전6:19-20 3:17.) 다시 말해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이는 그 사랑하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헤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 데 있다." 하였다.( 엡1:4 11 16) 이와같이 바울의 인간에 대한 신학사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 받으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예정 섭리임을 강조하였다.
5. 바울의 기독론
바울의 메시지의 기본 요지인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인간사 속에서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안에 두고 있다.
A.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 인간의 삶을 취하셨다는 것이다.( 갈4:4 (참고 요1:14 18).) 이것이 우리가 성육신이라고 부르는 교리이다. 바울은 성육신을 두가지 면에서 인식했다.
⑴ 성부 편에서의 성육신 인식
바울에게 성육신은 문자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한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모든 사람이 입고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롬8:3; 갈4:4-5(참고 요1:14))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시며,( 롬5:8, 8:39 (참고 요일4:9).)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고후5:19; 골1:19-20 (참고 요일4:10).) 그의 은사는 말할 수 없는 은사이다.( 엡2:4-5 (참고 요1:18 16; 약1:17).) 그와 같은 사랑의 행동 즉, 성육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본질상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행동이었다.
⑵ 성자 편에서의 성육신 인식
여기서 바울은 그 만이 볼 수 있는 독특한 면에서 성육신을 이해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땅에서 비로소 시작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영원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시기 위해 무엇인가 고귀한 것을 포기했다고 믿었다. "그는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고후 9:8) 이라고 말함은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세상이 있기 전부터 예정되었으며, 그 출발이 영원 전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엡1:4-5; 딤후1:9.) 바울의 이러한 사상이 빌립보서 2장 5-15절에 완전하게 나타나 있다. 거기서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권한을 갖고 계시면서도 그 권한을 포기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인간이 되신 점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복종에 대해 말한다. 예수는 권세와 능력과 만물을 다스릴 왕권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러나 그는 왕이 아니라 종으로 세상에 왔다. 그는 명령하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순종하려 왔다. 그는 죽음에 복종하였다.( 롬5:19; 히5:8 (참고 마20:28).) 그의 죽음이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빌2:8 (참고 마27:38 50; 막15:25 37).)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인간들을 위해서 즉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바울은 이 성육신의 실제성을 여러번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 바울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완전성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보았다. 또한 로마서 1장 3절에서 예수께서 어떻게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와같이 예수께서 실제로 육신을 입으심으로 후손이 되었다는 사실이 로마서 맨 처음에 나온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8장 3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낸 사실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실제성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와 요한서신에서도 볼 수 있다.( 눅1:26-31 2:10-12; 요일4:2-3.) 바울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로 보았다. 또 그는 성육신을 창세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엡1:3-12.) 바울에게 예수님의 인성은 대단히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의해서만큼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얻게 되는 구원의 내용이 많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볼 때, 그리스도의 삶은 구원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만큼이나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였다. 왜냐하면 이는 바울이 쓴 가장 어려운 내용들 중 이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구원의 사역에서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이라고 하는 이 사상은 바울의 서신가운데 주로 두 곳에 나온다. 고린도전서 15장 21-22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는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생명의 능력사상이 가장 충만하게 나타난 곳은 로마서 5장 12-21절이다. 이 두서신의 구절들의 기본 사상은 로마서 5장 19절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 구절의 요지는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바는 모든 사람들이 아담이 범한 동일한 형태의 죄를 범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아담으로부터 어떤 죄를 짓는 성향을 물려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바는, 모든 인간이 아담 안에서 문자 그대로 실제로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아담이 죄를 범했다는 그 사실이 모든 사람들을 죄인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아담 안에서 범죄했다는 이 사상으로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죄와 관련되어 있다. 즉 아담이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아담의 모든 후손들도 죄인이 되었다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이를 증거하였다.
바울의 논증 가운데는 확실한 기본적인 단계들이 있다. ① 바울의 논증의 기본은 '죽음은' 죄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죽음은 죄로 인해 왔다는 것이다. (롬5:12 6:20-21,23.) 죄가 없었다면 죽음도 결코 없었을 것이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② 아담은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 곧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그것으로 아담은 하나님 앞에 범죄했고, 또 그 때문에 죽어야 할 존재가 되었다.( 롬5:12 6:23 (참고 창2:16-17 3:17-19,히9:27)) ③ 그러나, 바울은 아담의 이 특별한 죄안에서 모든 사람들도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 이전에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었다."고 하여 로마서 5장 13-14절에 논증하였다. ④ 그러면 왜 율법도 없었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는데 사람이 죽어야 했나, 하는 것이다. 그 답변은 그들이 아담 안에서 범죄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담의 죄에 연류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 노릇했다 하였다.( 롬5:17 21 6:12.)
바울의 논증의 요지는 율법이 존재하기 전, 따라서 죄가 성립될 수 있기 전에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야 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온전한 의와 온전한 순종을 드렸다. 그래서 아담의 죄안에 연관되여 있던 인간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온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악하고 끝없이 계속되는 죄와 죽음의 결박 속에서 해방케하였다.( 롬8:1-2; 히5:8-9.) 즉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죄안에서 죄인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서 의로운 자되게 하였다. 이와같은 바울의 논증가운데는 영원한 진리가 내재해 있다. 즉 인간은 스스로 자유로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죄로 인한 사망과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인이 의인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롬3:23-24; 갈3:16; 빌3:9.) 이로 볼 때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이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며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의인됨을 강조하였다.
B.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바울의 끊임없이 계속되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본질적인 중심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고린도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했으며 또 갈리디아 교인들에게도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했다.( 고전1:232:2; 갈6:14.) 이와 같이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확실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의 아름다운 말로 가르치지 않았으며," 또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가 그들 보는 앞에 밝히 계시되었는데도 어찌하여 그들이 실족하였는지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고전1:17 2:1; 갈3:1.)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자체에 설복시키는 능력이 있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놓인 장벽들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고 확신했다.( 고전1:18; 엡2:13-14;골2:14-15.) 바울은 자신의 사명의 최우선적인 임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대해서 어떤 꾸미는 말없이 그냥 사실을 전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와 같은 확신을 가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어떤 진리를 발견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에 관해서" 기록했다. 또한 그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살전 5:10; 엡5:25.) 십자가의 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고 구속의 사상은 바울의 신학 사상 가운데 긴밀하고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 사실은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빌3:20.) 그가 말한 한 간략한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으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5절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했다.
이 말씀 속에는 두개의 사상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① 하나님의 사람들을 율법주의적인 안목에서 건지시고 삶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세력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함을 보이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 ② 하나님은 율법 아래 있는 그들이 당해야 할 형벌들에서 구하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유사한 것처럼 보이는 이 두개의 요소를 함께 묶어서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여기서 구속이란 인생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별에서 용서와 은혜를 입는 것을 말한다. 이와같은 자유함을 성취한 것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었다. 바울은 거듭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죄와 연관시킨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다.( 고전15:3.) 또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두에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또 그는 로마서에서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신 우리 주 예수에 관하여 이야기했으며" 또한 바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자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이야기 하였으며,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한다.( 갈1:4; 롬4:25, 5:6,8.) 이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행하신 크고 기본적인 사역은 인간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일이었다는 사실과, 또 그결과 그의 공생애와 특히 그의 죽으심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잃었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바울의 사상을 생각하는 데에 한가지에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희생"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으며, 또 에베소서 5장 2절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와 같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했다. 이 보다 더 바울사상 전체에 대한 열쇠이자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한 구절을 바울이 쓴 서신들 가운데 찾을 수 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이 바로 그 구절인데 거기서 바울은 이와 같이 말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이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받은 것을 기념한 아주 유명한 이스라엘의 절기였다. 유월절 이야기의 진수는 그 이름 자체에 있다. 영원토록 간직될 유월절의 진수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그 집의 가족들을 죽음의 형벌로부터 구출한 것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 바울의 사상 가운데 이와같은 사상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간들을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받게 될 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바울에게도 과연 그랬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가장 실제적인 의미에서 인간들을 위한 하나의 희생물이 된다. 이 희생이야말로, 인간들을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혼의 죽음에서 건지시는 희생이었다.
바울은 이 사상을 뒷받침하며 강조하는 진술을 두차례 이상 했다. ①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는 진술과 ② 고린도후서 5장 21절의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인간들의 죄와 또한 바울 자신의 죄를 위한 최상의 희생제물이 됨을 알았다.
이제 바울이 사용한 모든 표상들을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① 법앞에서 취한 표상으로 "칭의"가 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그가 마치 선인이었던 것처럼 대하신다. 그러나 죄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도덕적인 혼란이 생긴다. 따라서 마땅히 받아야 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누군가가 치러야 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바울이 말한 대로"이제 우리가 그의 피를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롬3:25-265:9; 고후5:21.) ② 우정에서 취한 표상으로 "화목"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행실이 깨끗하거나 마음이 청결한 자가 아닌 한, 아무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래 속성상 흠없이 정결하고 거룩하여 죄인으로서는 가까이 갈 수 없다. 그러면 누군가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 바울은 말한다.( 롬5:10-11; 딤전2:5; 골1:21-22.) ③ 노예에게서 취한 표상으로 "구속, 해방"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노예의 세계에서 노예인 본인이 몸값을 치르지 않고는 해방될 수 없다. 혹 자비가 많은 사람이 그를 대신해서 몸값을 치르면 된다. 인간의 노예 해방은 반드시 그의 몸값을 치러야만 한다. 죄많은 인간이 그 죄에서 해방되려면, 누군가가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희생을 해야 하는 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바울은 말한다.( 갈3:13; 롬5:8; 고전7:23-24; 롬14:8.) ④ 가정에서 취한 표상 중 "양자"삼음이라는 것이 있다. 세상 법에서도 양자로 입적하려면 정해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즉 새로운 아버지를 모시기 위한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가 자격을 갖추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바울은 말한다.( 롬8:15; 갈4:5 3:25.) ⑤ 희생으로부터 취한 표상으로 "속죄"라는 것이 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죄를 지으면 참회의 표시이자 증거를 하기 위해 소나 양을 희생시켰다. 그러나 바울의 경험으로는 소나 양같은 짐승을 희생시켜 죄를 대속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러한 희생을 마땅히 찾아야 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한 희생이 되어서 그러한 희생으로 인간의 죄를 속죄하셨다고 바울은 말한다.( 엡1:7;히9:12 (참고 벨전1:18-19).) ⑥ 바울이 사용한 마지막 표상이 있다. 그것은 바울의 마음에 매우 가깝게 있던 표상이다. 그것은 "회계(계산)"을 통한 표상이다. 바울의 사상은 지기 계산에 하나님과 균형을 맞출만한 사람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도저히 지불 능력이 없을 정도의 빚을 하나님께 지고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의 지비 안에서 그의 빚은 면제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빚의 댓가로 그에게 돌려진다. 이로서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의로 옷입게 된다 한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어떤 힘이나 혹은 우리가 노력함으로 해낼 수 있는 자신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 앞과 그분의 가족 앞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라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역사를 보았다. 또 바울이 본 이 하나님의 역사란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죄인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일을 가능케 하셨다고 말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도는 바울신학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고 또한 바울의 복음이기도 하다. 그런고로 십자가의 도는 화목하는 도요, 하나님의 아들되는 도요, 구원받는 도요, 복음이다.( 고전1:18; 롬1:16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이심- 고전1:24).)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우리가 자든지 깨든지 함께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살전5:10; 갈2:20 5:24; 고후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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