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1서 1장 3절)
제2차 세계 대전을 치르고 난 이후로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철학 운동이 있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Existentialism)입니다. 이 철학은 비참한 전쟁을 치르게 되면서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이렇게나 잔인하고 부조리하고 막무가내일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지한 질문으로부터 일어난 철학입니다.
이 실존주의 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에 〈실존적 교제(Existential Communion)〉란 용어가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아무런 이권이나 계산이 없이 순수한 영혼과 영혼의 만남을 일컬어 실존적 교제라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만남에는 너무나 얽히고설킨 이해타산이 많습니다. 순수한 영혼 대 영혼의 만남으로 만나지를 못하고 제각기 상대방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동기나 목적을 지니고 만납니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지를 못하고 수단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만남에서는 서로가 지치게 되고 힘들어지게 됩니다.
신약성경 중의 요한1서 첫 부분에서 아무런 동기나 이해타산이 없는 순수한 만남, 곧 실존적 만남 혹은 사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헬라어 Koinonia로 불리는 사귐이요, 만남입니다. 이 사귐의 중심에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아무런 세상적인 거래나 이해타산 혹은 동기나 수단이 없이 그냥 가슴과 가슴으로, 영혼과 영혼으로 만납니다. 그 사귐이 순수하기에 서로를 행복으로 이끕니다. 그 만남이 진실하기에 서로의 영혼에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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