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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국을 위한 결단, 남한 순행과 정읍 발언 ②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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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을 위한 결단, 남한 순행과 정읍 발언 ② 공산당에 대한 이승만의 비난이 거세어지고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나자, 곤란해진 쪽은 미 군정이었다. 국제적으로는 소련과 합의하며 국내적으로는 좌우 합작을 추진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는 이승만의 라디오 방송 원고를 사전 검열하여 소련에 대한 비난을 삭제했다. 이승만과 하지의 대결이 점차 치열해졌다. 이승만은 반탁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며 1946년 4월 15일부터 지방 유세에 들어갔다. 그의 연설 주제는 반탁과 반공이었다. “이론상으로 공산주의는 그럴 듯하다. 만일 이 주의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이 주의를 전하는 대로 실천한다면, 나도 그들을 존경할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자들은, 아름다운 이상으로써 양의 가죽을 만들어 쓰고 세계 정복을 꿈꾸는 소련의 앞잡이로서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것이다. ... 그들은 세계 사람들에게 각각 그들의 정부를 파괴하고 나라를 소련의 독재 하에 넣도록 훈련하고 있다. 당신의 동생일지라도 공산주의의 훈련을 과학적으로 받았다면, 이제는 당신의 동생이 아니다. 그 동생은 소련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부르며 당신의 국가 공업을 파괴하는 한편, 정부를 뒤엎고 동포들을 소련에 넘겨주려 할 것이다. 그러면 드디어는 당신의 나라는 소련의 위성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엔, 당신의 동생은 집 없는 거지가 되고 가족은 노예가 될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잘못을 깨달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승만의 유세는 남한 전역을 열광시켰다. 그에게 비판적인 미 군정의 여론 조사원조차 “이승만이란 이름은 신비로운 후광에 싸여 있다. 유세는 돌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고할 정도였다. 때로, 만 명이 넘는 거대한 군중이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앉아서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영남 유세를 마치고 호남 지역을 방문했을 무렵, 이승만에게 미국과 소련의 회담이 또다시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북한에는 공산 정권이 수립되어 한반도 공산화를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는데, 남한은 기약도 없이 미국과 소련의 가망성 없는 합의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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