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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북진 명령 운영자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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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의 북진 명령

  

이승만의 목표대로, 6.25한국전쟁 발발 5일 만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유엔군 참전 결의안을 이끌어냈고, 미군의 즉각적인 해공군의 파병에 이어 지상군 파병 결정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문제가 남아 있었다. 비록 미국이 이승만의 뜻대로 참전은 했으나, 미국의 정책은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남북 분단을 뜻하는 ‘38도선 회복이었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승만 대통령의 특유의 기민성과 결단력이 나온다. 이승만은 미국이 참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남북 통일에 걸림돌이 될 38도선 폐지론을 주장했다. 혹여 38도선이 북진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이승만은 이를 위해 트루먼 대통령에게, 북한 정권이 무력으로 38도선을 남침한 이상 더 이상 존속할 이유가 완전히 없어졌다. 따라서 전쟁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38도선 돌파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이에 트루먼도 91일 기자회견 석상에서 “38도선 돌파는 유엔에 달려 있다라고 화답했다. 이는 미국이 전쟁 초기 전쟁 이전 상태로의 복귀라는 최초 목표에서 ‘38도선 돌파 및 한국 통일이라는 새로운 목표로 전환하되, 유엔의 테두리 내에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를 계속 이슈화하였다.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한 뒤, 이승만은 통일의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했다. 920일 그는 인천 상륙 작전 경축 대회에서 38도선 돌파를 주장하며,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밀고 올라가 북진 통일을 이루겠다고 연설했다. 이승만에게는 오직 통일만이 존재했다.

 

그런데 인천 상륙 작전 후 중앙청에서 거행된 서울 환도식이 끝나고 나서, 이승만은 맥아더 장군에게 지체 없이 북진(北進)을 해야 합니다라고 하자, 맥아더는 유엔이 38도선 돌파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며 반대했다. 이에 이승만은 유엔이 이 문제를 결정할 때까지 장군은 휘하 부대를 데리고 기다릴 수가 있지만, 국군이 밀고 올라가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내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우리 국군은 북진할 것입니다라며 38도선 돌파를 암시했다.

 

그리고 이승만은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정일권 육군총장에게 북진 명령을 하달했다. 동해안에서 북진하던 국군 3사단 23연대101일 마침내 이승만의 북진 명령을 받고 38도선을 돌파하게 됐다.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은 경쟁을 벌이던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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